2011. 6.25.흙날. 비

조회 수 1227 추천 수 0 2011.07.11 09:54:05

 

 

서울로 돌아가는 이동학교 아이들은 청산을 떠나

천변길 좇아 오늘도 두 바퀴를 무사히 굴렸다는 소식입니다.

이레 일정 가운데 이틀이 지난 거지요.

차량으로 행렬 뒤에서 바라지하는 부모님들이 반장어머니께 소식을 주면

그 소식은 다시 모든 부모님들께로 보내집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흐린 하늘, 혹은 빗길 뚫고 서울로 가고 있지요.

보은군 마로면을 지나 선씨 종가 아당골까지 25km.

오늘은 반나절만 달리는 날이라 길이 가볍습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 비 오락가락,

어쩌면 자전거로 달리기엔 이런 날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위험이 더할 수 있는 단점 대신.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 도리사.

절집은 늘 고맙습니다,

거기 있어서,

그곳에 내가 가서.

절 아래서 묵고 창대비 내리는 냉산에 들어섰지요.

일제강점기 명암선생은 ‘육산가(六山歌)’에서

‘굶으면 서산(西山)을 본받겠고 먹으면 첩산(疊山)을 본받으리.

숨어서는 우산(盂山)을 본받겠고 피하면 비산(鼻山)을 본받으리.

살아서는 냉산(冷山)을 본받고 죽으면 문산(文山)을 본받으리.

만나는 대로 육산(六山)을 본받겠으니 구릉도 가히 산을 배우리라’고 읊으며

일제가 주는 훈장을 거부했더랬지요.

절의의 상징인 서산 백이숙제 등 호에

‘산’ 자가 들어가는 중국 여섯 선비의 고고한 기개를 본받겠다는 내용입니다.

그 냉산에 도리사 있습니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건너가 처음 세웠다는 가람.

 

검박하게 잘 늙은 절,

극락전에 이르면 그 뜻을 압니다.

그래요, 검박하고 참 보기 좋게 나이든 절입니다.

생을 저리 살다가고프지요.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또한 걸음을 세웁니다.

비가 쏟아지듯 내리는 데도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탑이었더랍니다.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오른 산이 다 내려다보이는 선방에서

아이랑 잠시 앉아 온 산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보았더랬지요.

짧으나 귀한 여행이었답니다.

 

비가 좀 멎었고,

김천역에서 기락샘 실어 들어오고,

마을에 새로 이사를 들어와 산을 개간하기 시작한 이웃들이 건너도 와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지난 19일 늦은 밤 작은 소란이 교무실에서 있었고,

그때 건너오셔서 도움을 입었던 인연이기도 하지요.

고마움이고, 그리고 이웃 간 인사였답니다.

한동안 저녁을 물꼬에서 드시기로 합니다.

자리 잡으시는 데 도움 되시길.

 

아이들이 비운 학교를 둘러봅니다.

깨졌으나 치우지 못한 창문도 보입니다.

볕이 나면 이불도 빨기 시작해야겠지요.

아, 아이들의 흔적...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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