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야!”

뒷좌석의 아이가 잠이 든 모양입니다.

“자나보구나...”

“엉, 응? 예?”

“아니야, 중요한 얘기. 자.”

그런데 아이가 벌떡 일어납니다.

“말해. 중요한 게 아니더라도 말해.”

“아니야.”

“엄마 얘기면 다 중요하지.”

고쳐 앉으며 그리 말하는 아이로 또 웃었더랍니다.

이 아이들이 없다면 열두 번도 더 망하고 말았을 세상!

 

간밤 새벽 3시께 비 내리더니

하던 말을 멈추듯 희부옇게 밝아오는 기운에 멎었더랬지요.

그러고는 종일을 비와 해와 구름과 거친 바람이

저마다 공론들이었답니다.

그리고 밤, 대해리에 눈발 날렸습니다,

첫눈이라기보단 곧 첫눈 내릴 거야 말거는 눈.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

학교를 다니지 않는 열네 살 아들도 같이 하는 아침수행이 참 좋습니다,

뭐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따라 나온 터라

꼭 대배 하다 말고 해우소 한번 달려갔다 오기는 해도.

 

출장 가는 길에 아이도 동행.

어른들이 특수아들의 재활을 돕는 동안

아이는 특수아들이 오늘 말을 끌거나 안장을 챙기거나 재갈을 물리고,

삽 들고 구덩이 파서 수확한 무를 묻고

(그곳서 아무도 무를 땅에 묻어본 적이 없다 하기.

지난주엔 마늘 심는 것을 가르치며 밭에 마늘 다 놓더니.)

상담실 청소도 말끔히 해놓았습니다,

거기 늘 인력이 모자라 널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산골 사는 우리 삶도 그러한데...

그런데 찾아온 이들이 기꺼이 손발 내서 산골짝 우리 삶이 이어지듯,

우리도 역시 그곳서 그리 합니다.

할 만한 사람이 하기, 기꺼이 하기!

도움이란 것, 나눔이란 것은 그리 퍼지기 마련,

세상의 평화를 원하면 내가 평화가 되어야 하는 것과 매한가지일 테지요.

수행이 그런 삶을 잘 이끌어줍니다.

 

오늘은 포항의 5년 2개월 된 자폐아와

경주의 열두 살 자폐아의 재활 과정에 함께 했습니다.

바람 몹시 불고 있었지요.

말(言)을 통한 의사소통 뒤

말(馬)을 통한 의사소통을 시도했습니다.

무엇이 저 아이들의 말을 가로막는가,

저 아이들과 세상 사이에 가로막힌 판은 무엇으로 되어있는가,

저 아이는 무엇이 두려운가,

저 아이들의 이야기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시 들여다보기를 반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밤, 으윽! 창밖으론 온갖 짐승들이 달리고 혼들이 울부짖습니다.

그 옛날 나라를 잃고 떠돌던 만주벌판의 밤 어느 쯤이 이러했을까요.

어찌 이리 거친 바람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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