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계자 첫날, 8월 9일 달날

조회 수 2016 추천 수 0 2004.08.11 13:45:00
< 오래된 호도나무 가지에 걸터앉았다 >

"안녕하세요?"
청소를 하던 아이들도 빠져나가고 한산한 가마솥방,
한 아이 물을 마시러 들어서면서도 곱게 인사합니다.
이름표를 얼른 넘겨다 보니 아영입니다.
"니네 오빠가 정혁이니?"
"예!"
"소문 들었니?"
"뭐요?"
"니네 오빠가 장구를 깼대."
"네에?"
마시던 물을 토할 뻔합니다.
마저 마신 아영이는 후다닥 달려나갑니다.
"오빠아!"
그것도 아주 얌전하고 길게 부르며.
또 어떤 계자가 될지요...

더운 한낮입니다.
아따, 그 놈들 지치지도 않네,
그렇게 종일 울어대는 매미들.
그러다 뚜욱,
그친 매미울음 뒤 한참의 정적입니다.
터무니없이 고요해진 세상은
텅 빈 우주 속에 동그마니 홀로 있는 듯합니다.
< 뚝, 매미소리도 멎는 한낮 >에
둘러쳐진 산들과 햇볕 한껏 안은 흙
그리고 저 하늘이 펼치는 공간에서
또 한바탕 신명의 무대가 되리라 짐작해보는 97 계자 첫날입니다.
아이들이 작습니다.
지난 번과 같이 마흔 둘이나 마치 절반인 듯합니다,
실제 나이도 더 어리고.
참 곳곳에서도 모였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대구 대전 충북 경북 경남 전북 강원.
(이번에도 주의력결핍이라든지로 약을 들고 온 아이들이 있습니다.
멕이면 좀 낫다 합니다.
그러나 예서는 먹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 좀 편차고 말도 안되는 약을 먹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참, 너무 성큼 커버려서 한참을 누구일까 고개 갸웃거린 아이도 있었네요.
보긴 봤는데...
뻥튀기 기계를 거쳤다 해도
수빈이는 얼굴이 많이 남아있어 학교 대문에서 바로 알아보았는데
선호는 저녁답에야, 선호 맞지, 내가 아는 선호지, 했더랍니다.
세상에...
그러고 보면 아이들의 어린 날이란 게 그리 오래가 아닙니다.
부모가 이제 좀 같이 할 여유(돈이며 시간이며) 생겼다 싶으면
웬 걸요, 이미 커버려 함께 할 일이 없습니다.
요새는 5학년만 돼도 부모님이랑 여행 안나서는 애들 많다지요,
그냥 집보겠다 한답니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그렇게 시작하던 다이아나 루먼스의 시가 있었댔지요.
바로 지금 아이의 시간에 어른들이 많이 함께 할 수 있음 좋겠습니다.

열 여섯 어른(새끼일꾼 둘도)이 같이 하기로 했으나
방문하기로 한 어른이 연락도 없이 기차역에 오지 않았고
새끼일꾼 둘은 일정이 바뀌어
열 셋의 어른이 함께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떠나 와서 곤하기도 곤할 겝니다.
지선이랑 의륭이는 너른 교실을 둘이 차지하고
자면서 피로를 풀었다지요.
베개 받쳐주었더니 더 푹 떨어졌더이다.

깊어지는 교실이 있었습니다.
그냥 덩어리로 다 모여 하쟀습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리 물었던 시간입니다.
주욱 돌려 보여주면 창틀에 앉은 원일이가 다 봤네 하는 고개짓을 하고
그제야 쪽을 넘겨가며 그림책도 보았지요.
모둠마다 나무 구경도 나갔네요.
거칠기도 모양새도 어쩜 그리 다를까요,
열매면 열매, 잎이면 잎, 줄기면 줄기.
누구네는 아주 아주 오래 산 호도나무의
길게 뻗은 한 가지 걸터앉아 새처럼 노래도 부르고
그 아래선 잠자리도 좇았답니다.
( 저녁 한데모임에서
나무랑 만났던 저마다의 얘기를 통해
나무에 대해 더 깊어질 수 있었더라지요)
그 참에 물가까지 가서 물장구도 치고 돌아와
이제 나무를 다뤄보기로 했네요.
온 아이들이 튜울립 나무 아래서
톱 들고 망치 들고 낫도 들고
조각칼과 연필칼로 저마다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창기와 류옥하다 찬희가 작은 상처도 나고.
이러다 해 꼴딱 넘기기 일도 아니다할 만치
말리고 말려서야 끝을 낸 시간이었네요.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라니요,
자기 작업 앞에서는 누구나 명상가더이다.

저녁에는 후식으로 수박이 나왔더랍니다.
지영이 원일 은영 여연 용석 시온,
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선 아이들을 쳐다만 보고 있어도 맛이 다 납니다.
어머님들, 수박 좀 멕여 보내셔요, 다음엔.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류옥하다는
바깥에 나가보면 찍 소리도 못할 것을
제 사는 데라고 어찌나 아는 체를 하는지...
어둡기 시작하자 다른 캠프를 다녀본 아이들이 했던 가락을 늘여놓겠지요.
특히 귀신놀이는 많은 캠프의 단골 메뉴라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둘러보며
"(이번 아이들이) 귀신에 관심이 많구나아."
이제 다 파악했다, 뭐 그런 표정입니다.

주말을 보내고 이어서 계자를 온
지선 경은 경민 우진이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요.
마흔 둘의 어울림은 또 어떤 그림일까요...

"...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아나 루먼스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지요.

* 사흘이나 아연이를 아영이로 불렀습니다, 아무런 의심없이.
저도(아연) 암말 않았지 뭐예요,
하기야 당연히 제 이름 부르는 줄 알았을 테니까...(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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