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쇠날 맑음,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에

조회 수 1362 추천 수 0 2004.09.17 09:21:00

“저녁놀 봤어요?”
“예뻤지요?”
“늑대소리도 들었어요.”
정말 늑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기 전의 시간을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이라 부른다던가요.
조릿대집에서 밤에 구워먹을 밤을 줍느라
저녁 먹은 아이들이 장대들고 밤나무 아래 섰던 때였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 사이를 스며듭니다.
그 스민만큼 길이 되어 혹은 영역이 되어
우리 삶을 끌거나 우리 삶의 토지를 성큼성큼 넓히고 있답니다.
“쇠날은 화려해요!”
남들 부담스러워하는 글쓰기도 즐기는 이 아이들이니
우리말 우리글이 있는 쇠날이 마냥 신이 납니다.
손풀기에서 겨우 연필 한자루도 하는, 색깔도 없는 그림도 즐기고
시를 분석하는 것도 재밌으라 하며
영어까지도 몸으로 놀고 있으니 어려울 게 없지요.
(가끔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싶지요.
너무나 장관인 아이들 모습을
오늘은 얼른 담아보자고 사진기 들고 갔더니
이런,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오후엔 세시간이나 흙으로 동물을 만들며 노는데,
흙이라고 함부로 쓰지 말자 하니
마지막 덩이까지 야물게 귀하게 쓰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모남순님이 저녁 밥상에 그물같은 무잎을 솎아와 내놓으셨는데,
우리 아이들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감동이었지요.
더 무얼 바란답니까.

대동놀이를 끝내고 조릿대집으로 돌아가서
밤을 구웠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구운 밤보다 더 맛있는 건
우리 아이들이 주고받는 생활이야기들이지요.
밤이 익고
밤이 깊어가고
깜빡깜빡 졸음이 넘어오는데,
아이들은 별보다 더 빛나는 빛을 발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14 8월 29일-9월 12일, 밥알 모남순님 옥영경 2004-09-17 1270
313 9월 11-12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4-09-17 1303
» 9월 10일 쇠날 맑음,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에 옥영경 2004-09-17 1362
311 9월 9일 나무날 먹구름 있으나 맑다고 할 만한 옥영경 2004-09-17 1267
310 9월 5-8일, 방문자 오해령님 머물다 옥영경 2004-09-16 1664
309 9월 8일 물날, 머리 좀 썼습니다 옥영경 2004-09-16 1267
308 9월 5-7일, 형길샘 머물다 옥영경 2004-09-16 1353
307 9월 7일 불날, < 흙 > 옥영경 2004-09-16 1256
306 9월 6일 달날, 포도 다 팔았지요 옥영경 2004-09-16 1271
305 9월 4-5일, < 포도요, 포도! > 옥영경 2004-09-16 1257
304 9월 4일 흙날, 물꼬도 달았다! 옥영경 2004-09-16 1344
303 9월 3일 쇠날, < 벌레, 너는 죽었다! > 옥영경 2004-09-16 1601
302 9월 2일 나무날, 갯벌이랑 개펄 가다 옥영경 2004-09-14 1906
301 9월 1일, 공동체 새식구 옥영경 2004-09-14 1367
300 9월 1일, 몸이 땅바닥에 있다가도 옥영경 2004-09-14 1329
299 9월 1일 물날, 저농약 포도를 내놓습니다 옥영경 2004-09-14 1313
298 8월 31일, 이따만한 종이를 들고 오는데... 옥영경 2004-09-14 1423
297 8월 30일 달날, 가을학기 시작 옥영경 2004-09-14 1260
296 8월 28-9일, 젊은 할아버지와 류옥하다 옥영경 2004-09-14 1459
295 8월 23일, 류기락샘 출국 전날 옥영경 2004-08-25 20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