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쇠날 맑음,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에

조회 수 1356 추천 수 0 2004.09.17 09:21:00

“저녁놀 봤어요?”
“예뻤지요?”
“늑대소리도 들었어요.”
정말 늑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기 전의 시간을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이라 부른다던가요.
조릿대집에서 밤에 구워먹을 밤을 줍느라
저녁 먹은 아이들이 장대들고 밤나무 아래 섰던 때였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 사이를 스며듭니다.
그 스민만큼 길이 되어 혹은 영역이 되어
우리 삶을 끌거나 우리 삶의 토지를 성큼성큼 넓히고 있답니다.
“쇠날은 화려해요!”
남들 부담스러워하는 글쓰기도 즐기는 이 아이들이니
우리말 우리글이 있는 쇠날이 마냥 신이 납니다.
손풀기에서 겨우 연필 한자루도 하는, 색깔도 없는 그림도 즐기고
시를 분석하는 것도 재밌으라 하며
영어까지도 몸으로 놀고 있으니 어려울 게 없지요.
(가끔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싶지요.
너무나 장관인 아이들 모습을
오늘은 얼른 담아보자고 사진기 들고 갔더니
이런,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오후엔 세시간이나 흙으로 동물을 만들며 노는데,
흙이라고 함부로 쓰지 말자 하니
마지막 덩이까지 야물게 귀하게 쓰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모남순님이 저녁 밥상에 그물같은 무잎을 솎아와 내놓으셨는데,
우리 아이들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감동이었지요.
더 무얼 바란답니까.

대동놀이를 끝내고 조릿대집으로 돌아가서
밤을 구웠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구운 밤보다 더 맛있는 건
우리 아이들이 주고받는 생활이야기들이지요.
밤이 익고
밤이 깊어가고
깜빡깜빡 졸음이 넘어오는데,
아이들은 별보다 더 빛나는 빛을 발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34 10월 5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0-12 1343
333 10월 4일 달날 흐림 옥영경 2004-10-12 1292
332 9월 26-8일, 방문자 권호정님 옥영경 2004-09-28 1837
331 9월 28일 불날 더러 맑기도, 우리집 닭 옥영경 2004-09-28 1525
330 9월 26일 해날 흐림, 집짐승들의 밥상 옥영경 2004-09-28 1272
329 9월 25일 흙날 맑되 어스름에는 흐려진 옥영경 2004-09-28 1283
328 9월 21-4일, 밥알식구 안은희님 옥영경 2004-09-28 1420
327 9월 24일-10월 3일, 한가위방학 옥영경 2004-09-28 1198
326 9월 24일 쇠날 맑음, 령이의 통장 옥영경 2004-09-28 1213
325 9월 23일 나무날 맑음, 밭이 넓어졌어요 옥영경 2004-09-28 1251
324 9월 22일 물날 맑음, 딴 거 안먹어도 옥영경 2004-09-28 1299
323 9월 21일 불날 흐린 속 드나드는 볕 옥영경 2004-09-21 1568
322 9월 17-19일, 다섯 품앗이샘 옥영경 2004-09-21 1411
321 9월 16일, 바깥샘 도재모샘과 오태석샘 옥영경 2004-09-21 1870
320 9월 16일 나무날 비오다 갬 옥영경 2004-09-21 1265
319 9월 15일 물날 갠 듯 하다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4-09-21 1414
318 9월 14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09-21 1263
317 9월 13일,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분들 옥영경 2004-09-21 1579
316 9월 13일 달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4-09-21 1303
315 9월 12일 해날 비, 서늘해집니다 옥영경 2004-09-17 134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