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계자 이틀째, 10월 30일 흙날 맑음

조회 수 1992 추천 수 0 2004.10.31 21:32:00
"선생님, 정근이 오빠는 어딨어요?"
"아, 정근이 오빠 친척인 모양이구나?"
"아, 그게.... 하다는 어디에 갔어요?"
이쯤 되면 틀림없이 이 학교(자유학교 물꼬-상설학교)를 다니는
우리 정근이의 고모 딸쯤이겠지요.
포항에서 온 일곱 살 다원이와 2학년 지원이 말입니다.
"물꼬, 컴퓨터에(텔레비젼도 아니고) 나오죠?"
"아, 우리가 니네 집 컴퓨터에도 나오는구나."
"우리도 사진 찍히면 거기 나올 거지요?"
도대체 얼마나 학교 이야기를 들었으면
넘의 학교사를 줄줄 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적지 않은 아이들이 그래요.
"곰사냥 가요?"
"엥, 이 밤에? 낼은 갈 준비로 바쁘고."
"애들이 지금 막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정작 어제 오늘 이틀 지낸 것보다
더 많은 물꼬 이야기를 안고들 온 아이들이랍니다.
"가기 힘든 곳 갈 수 있게 된 거라고..."
어느 녀석은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등떠밀려 왔다지요.

< 열린교실 >

'상범샘은 왜 저기 앉았지?'
풀잎엽서를 맡은 샘이
뭔가 도움이 필요해서 보내온 아이들이겠지요.
복도 길목에 몇 아이들에게 펀치로 구멍을 뚫어주고 있는 상범샘을 지나
뚝딱뚝딱을 찾으러 목공실을 갔으나 텅비어있었습니다.
다싫다에서 하던 감옥쌓기를 끝내고
축구공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는 세호 누리 태영 재현 재훈이를 지나쳐
본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따따만한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똥 오줌 아이들이
돌아와 여장을 풀고 있데요.
학교에 있는 신문 다 끌어내 겹겹이 붙이고 이어 접은 거대한 배들이었더이다.
어찌나 실하게 만들었는지 평생 쓰겠는 유진이와 류옥하다의 배에는
버젓이 노까지 달렸더래요.
이제 손을 닦고 돌아와 나무조각쌓기에 한창인 일곱 살 떼거리들입니다.
그 소란에도 손가락 한 차례 찔리지 않고
영운이도 은정이도 다영이도 의로도, 아, 그리고 대호도
주머니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호는 색종이까지 들고 와 주머니를 장식하고 있더군요.
그 옆방에선 시연 경민 다원 귀남이
다 쓴 물건들로 비행기를 만들고 있데요.
그런데 뚝딱뚝딱 아이들은 도대체 어데로 간 걸까요?
"상범샘, 뚝딱뚝딱 아니었나?"
맞답니다.
"그런데 왜..."
"아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업종을 바꿨어요."
뭘 만들까 얘기를 모으자니 다 제 말만 하고
이 놈을 보라 하면 저 놈이 제 가 있고
저 놈을 불러놓으면 딴 놈들이 티격태격하고 있고...
그리하여 폐강된 풀잎엽서를 하게 된 거였더랍니다.
종화 근우 승현 하늘 준영 호준 도원이 그들이었네요.
"결국 호준이는 마지막까지 절로 내뺐잖아요."
근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범샘을 향해 물었지요.
곁에 있는 김준영을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근우도 수준이 비슷하지?"
"그럼요. 엄마도 그러두만, 샘들 고생하겠다고."
"뭐가요?"
근우가 시트지를 붙이다가 고개를 들어 묻습니다.
"니네 엄마도 그랬다데, 샘들이 고생 좀 하겠다고. 진실이가?"
끄덕끄덕.
머리를 끌어 안아줍니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근우입니다.
"니는 어찌 니 삶이 그래노?"
안에서고 밖에서고 자기가 말을 좀 안듣는다는 김준영에게 묻습니다.
"너는 혼자야?"
자기를 팬다는 중학생 누나가 있답니다.
"저도 패고 누나도 패요."
"서로 말을 안 듣나?"
"아니요, 웬수 관계라서 그래요."
넙죽넙죽 잘도 받는 녀석 앞에서 또 한바탕 이 가을날이 유쾌합니다.
근데 허준영은 어데 있는 거지...
(책방에 있었답디다)


< 보글보글방 >

똥오줌네 방을 들어서다 웃느라 그만 엎어질 뻔했습니다.
상 세 개(상다리를 접은 채)를 주욱 가로로 늘여 붙여서
일곱 살 열 여섯에 샘 세 분이 빼곡히 앉았는데 어찌나 진지한지,
걸리버가 소인국에 가서 느꼈음직한,
바글바글한 개미굴을 들여다보는 기분 들데요.
민지샘 아네사샘이 반죽을 열심히 밀고 있고
아이들은 달고나 찍는 틀로 혹은 숟가락으로
저마다 갖은 무늬를 다 도려냅니다.
팔을 걷어 부친 창욱이,
재미나보였는지 예 와서 기웃거리는 2학년 형아 호준이,
엄마 보고 싶다던 게 언제였던가 싶게
도연이는 열심히 찍어내 가운데 있는 그릇으로 바지런히 나릅니다.
"손도 찍어 봐."
소주병으로 반죽을 미는 은수,
밀가루로 연지곤지 바른 성일이,
뭘 사사받는 제자 같은 자세로 앉았는 준희,
볼에 밀가루 떡칠한 동형이도 열심입니다.
"이렇게 뭉치면 어떡해?"
핀잔해대는 건 이지 목소리네요.
반죽을 기다리며 동호는 제 이름표를 빙빙 돌리고,
모서리에서 암소리 않고 열심히 민무늬를 떼어내는 수제비 정통파 다원이,
산에 일 나갔던 남자샘들 점심 먹으러 평상에 나오라는데도
가던 걸음 되짚어와 기어이 숟가락 들고 무늬를 찍어보는 노근샘,
(어린)애들하고 안논다고 뻗댕기다 이젠 오길 잘했다 신이 난 류옥하다,
입은 과묵하나 손은 더디지 않은 유진이,
제 찍은 무늬보다 말이 더 예뿐 예린이,
그 때 동휘는 손을 닦고 들어서고...

세호 김준영 근우 진석 귀남 네들로 이뤄진 떡볶기네는
얼굴들만 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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