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5.흙날. 후덥하고 흐린

조회 수 736 추천 수 0 2014.07.16 23:03:09


서울.

대해리는 나왔습니다, 소사아저씨한테 다음 일들을 일러놓고.

아일랜드 연수로 비우는 한 달,

샘들이 오가며 물꼬를 챙길 것입니다.

계자 관련 미리 점검할 것들을 전화로 확인해놓고,

샘들과도 필요한 움직임을 몇 점검하고,

위탁이며 몇 수업의 마지막 상담.

그리고 청계천 헌책방에 들러 아일랜드 행에 달고 갈 책 몇 챙기고.


벗의 글이 하나 닿았습니다.

잘 다녀오란 말이 없어도 그게 인사인 줄 알지요.

너라고 쓰고 사랑해, 라고 읽는 것처럼,

너라고 쓰고 보고 싶어, 라고 읽는 것처럼.



어느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제가 특별히 공감과 애도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살기 위해 살고

가능한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이런 시간도 괜찮다고 여기며 살아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 못해 울부짖는 엄마를 멀리서 보는 꿈을 아주 잠깐 꾸었는데

며칠 동안 그 엄마의 목소리와 옷 색깔까지 계속 떠올라요.

방황하는 칼날이라는 소설과 영화의 테마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미래란 없다...란 것이었어요.


옥샘 저는,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이러는 게 아니고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나에게 일어날 일이고

다시 그런 강도의 고통이 오면 더는 나는 살 수 없겠구나를 알아서이고,

내가 괜찮다는 사실이 너무 허술한 오늘에 기대있다는 것이 앞으로도 뒤로도 명백해서

어느 날은 잠을 못 자요.


이 어느 날을...

누구에게 어떻게도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원래 인간의 삶이란 건 허술한 것.

내 침잠을 누구에게 어떻게도 설명하기가 어려운 때

바로 그 어떻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 마음이 바로 그 글월에 있었으니.

하여 벗이 좋구나,

하여 벗이 고맙구나...


그런 강도의 고통이 오면 더는 나는 살 수 없겠구나...

아니요, 우리 다 살아요, 살아질 겁니다, 살아야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미래란 없다...

그렇지요, 우리 새끼 잃고 어찌 살아간단 말입니까.

그래도 우리 알아요,

심지어 곡기를 넣고 화장실을 가고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을

혐오하는 순간까지 온다는 걸,

그래도 산목숨은 또 그리 살아진다는 걸,

그게 삶인 걸, 처연한 인간사인 걸.

그리고, 그 처연함이 어디 사람살이의 다이겠는지.


시 한 구절 되내입니다.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가운데서 '겨울나기'의 마지막 연은

이리 쓰고 있습디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예,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습니다!


잘 다녀오리다.

여여하소.

여여해야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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