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공부 날적이

조회 수 869 추천 수 0 2003.05.30 20:04:00
4336. 5. 30. 쇠날

어, 현수, 진수, 병윤, 대련이가 다 왔습니다. 어쩐 일인가 했는데, 어쩐 일인가 하는 사이, 대련이와 몇몇이서 공 차다 유리도 하나 깨 먹었습니다.
네 명을 불러 놓고 얘기했습니다.
"난 너희들이 왔으면 좋겠다. 근데 물꼬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지만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오늘 어떻게 왔니? 계속 오고 싶어서 왔니, 아님 그냥 놀러 왔니?"
말이 없습니다. 꿀 먹은 벙어립니다.
"그럼 이렇게 말할게. 1번 계속 오고 싶어 왔다. 2번 심심해서 놀러왔다. 3번 그냥 왔다갔다 할 것이다. 몇 번이니?"
"2번이요." 다들 2번이라 합니다.
"그럼 물꼬에 올 수 없다. 저번에 하루종일 학교에 와서 놀았던 것처럼, 놀 땐 얼마든지 와서 놀 수 있지만, 이 방과후공부 시간은 또 다르잖아. 집에 가자. 나 태워줄게."
다들 말없이 일어납니다.
문을 나서는데, 희정샘도 한 마디 합니다. 너희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차에 올라타서 또 얘기했습니다.
"난 진심으로 너희들이 왔으면 좋겠다. 그동안 보고싶기도 했고. 근데 너희들 어째 한마디 말도 없이 안 오고 그러냐. 너희들 진심을 알고 싶다. 물꼬에 오고 싶니?"
"어떨 땐 오고 싶고, 어떨 땐 안 오고 싶고.."
"어떨 때 오고 싶고, 어떨 때 안 오고 싶은데?"
"월, 화, 수, 목요일은 만화 하니까 안 오고 싶고, 금요일은 만화 안 하니까 심심해서 물꼬 오고싶고..."
"아, 그렇구나. 음, 그럼 정말 물꼬에 올 수 없겠다. 우리가 같이 모여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것엔 분명히 같이 모여 잘 살아보자는 약속도 있는 거다. 근데 너희들은 그 약속 부분은 쏙 빼고, 오고 싶을 때 오겠다는 얘기잖아. 그냥 놀러오는 것도 아니고, 방과후공부 시간에 그렇게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내내 말이 없습니다. 저도 참 안타깝고 서운하고 그렇습니다. 애들 내리는 데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갑니다. 더 섭섭했습니다. 특히 5학년이나 되는 현수가 그런 식으로 말해서 더 슬펐습니다.

간식을 먹는데, 상연이가 물어봅니다.
"선생님, 아까 대련이 형이랑 아까 그 형아들 유리창 깨서 돌려 보냈어요?"
"유리창 깨서 집에 보낸 게 아니고, 왜 보낸 지는 있다 한데모임 시간에 얘기해 줄게."
옆에 있던 무연이가 계속 민근이를 약올립니다. 두고 봐도 너무 약올립니다.
정색을 하고 무연이한테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둘이 가서 해결하라 했지요. 가서 한번 싸우라고 했습니다. 싸우고 오더니, 무연이 씩씩대며 칼도 던지고 가위도 던집니다. 무연이는 화가 나면 뭘 그렇게 집어 던집니다. 붙들고 엉덩이를 몇 차례 때렸습니다. 그건 정말 나쁜 버릇이라고... 정말 둘의 싸움은 끊이질 않습니다.

한데모임 시간입니다.
손을 막 들더니, 수진이가 물어봅니다.
"아까 간식 먹을 때, 상연이가 선생님께 뭐 질문해서 선생님이 나중에 한데모임 시간에 말해 준다 했는데, 그 질문은 뭔지 모르겠어요."
정말 애들이지 않습니까. 너무 웃겼습니다.
"으응, 상연이가 유리창 깨서 대련이랑 형아들 돌려보냈냐고 물어봐서 그렇지 않다 그랬고, 이제 까닭을 말해줄게.
아까 현수, 진수, 대련, 병윤이한테 계속 오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월, 화, 수, 목요일 만화 할 때는 안 오고 싶고, 금요일 만화 안 할 때는 오고 싶다 그래서, 그러면 올 수 없겠다. 우리가 같이 공부하는 데는 분명히 같이 잘 하자는 약속도 있는데 그 약속은 쏙 빼버리고 그냥 오고 싶을 때 오겠다 그런 거 아니냐, 그러면 올 수 없다 그랬어."
"그놈의 만화 때문에..."
"아니야, 그건 만화때문이 아니냐. 현수, 진수, 대련, 병윤이 마음때문이지. 오고 싶으면 오면 되잖아."
그리고 우리도 모금을 해서, 이라크 아이들이 약품을 살 수 있게 보내자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돼지 저금통을 갖다 놓기로 했지요.

애들 요즘 바느질 하느라 열심입니다. 쿠션도 만들고, 머리끈도 만들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정말 열심히 만듭니다.
저학년 과학시간에는 찌그러진 탁구공을 펴기로 했는데, 이빨로 부지런히 펴는 애들도 있고, 잽싸게 6학년 민근이한테 방법을 물어 뜨거운 물에 담궈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답이다, 저게 답이다 말해주진 않았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궁.리.해 보는 습관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마룻바닥에서, 방바닥에서, 돌 위에서, 탁구공으로 튕겨보기도 하고, 탁구공 가지고 놀았습니다. 고학년은 강당에서 풍물을 쳤지요.

집에 가려는데, 민근이 신발이 없습니다. 휴, 근데 너무 뻔합니다. 먼저 차 옆에 가서 놀고 있는 무연이에게 어디 숨겼냐고 물었는데 안 숨겼답니다. 몇번을 되물어도 안 숨겼다 합니다. 근데 어째요, 6살 대건이가 무연이 형아가 숨겼다 합니다. 그 순간 꼭 필요했던 건 아닌데... 어쨌거나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 살살살 약올리는 무연이가 너무 미웠습니다.
"너 왜 거짓말하니, 넌 다음 주부터 자유학교에 올 수 없다."
"왜요?"
"그건 너가 더 잘 알잖아."

차유에 도착해서 내리기 직전에, 무연이가 저를 부릅니다.
"선생님, 저 월요일날 올래요."
"안 돼, 거짓말 했잖아."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거짓말 안 할거야?"
"네."
"신발 숨기고 그러는 것도 안 할거야?"
"네."
"..... 그래, 다음 주에 보자."
무연이 손을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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