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건지기’

고맙지, 무슨 인연 깊어 이 산마을에서 이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하는가.

남송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수련을 하고

티벳 대배로 백배를 하고

호흡명상에 들다.

다른 존재에게 온전히 엎드리기,

내 지나간 날들에 대한 감사와 내 앞에 올 날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

‘내가 고요하기를, 내가 평화롭기를, 내가 고통이 없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그러하듯 남이 고요하기를, 내가 그러하듯 남이 평화롭기를,

내가 그러하듯 남이 고통이 없기를, 내가 그러하듯 모두가 행복하기를.’


‘샘’.

어딘가에서 물은 시작되었으리.

그 물이 강물 되고 바다 되리.

차차 깊어간다는 의미로 이번 계자에서 이름 붙인 시간.

관계를 뜻하기도 하고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할.

아침 밥상을 물리고 새 목공실 앞으로 갔다.

풀을 뽑는다.

지난 4월의 빈들에서 맨질하게 만들어두었던 곳이라도

풀은 뜨거웠을 우리들이 보낸 여름을 충분히 반영해주고 있었다.

여름 날 서너 차례는 뽑는 풀인데 손도 대지 못한 채 아이들 계자를 맞았더랬네.


하루 먼저 들어와 하루 일찍 나가는 정환샘과 희연샘을 낮 버스로 보내기 전

차를 달여 내다. 오늘은 찬 음료가 좋으리.

긴 유리잔(물꼬에는 주스잔 대신 큰 맥주잔이 있을 뿐)에

시럽(물론 물꼬에서 만든)과 오렌지주스를 저어 넣고 얼음을 쟁였다.

그 위에 달인 홍차로 층을 쌓았네; 떼오오랑쥬. 색 좋지.

빨대를 넣어 위에 홍차부터 마셔가도 좋고 섞어 먹어도 좋고.

민트는 달골 앞마당에서 눈으로 나중에 얹기로 하고.


낮 버스로 인교샘도 들어오고, 나가는 이들이 갔다.

“정환샘, 희연샘, 한 번에 끝내자!”

교사임용을 준비하는 졸업반들이다.

인교샘은 162 계자를 끝내고 하룻밤을 더 자고 간 건호를 맞고 오느라

하루를 늦게 합류하다.


여름날의 이곳은 점심시간이 세 시간.

너무 더웠던 날엔 네 시간이 되기도.

낮밥을 먹은 뒤 바람 솔솔 드는 복도 마루들에 뒹구는.

마침 내일 먹을 감자샐러드에 들어갈 채소(야채는 やさい;야사이에서 온)를 다지던 중

아하, 얼굴에 팩을 해도 좋으리 했네.

“연규샘아, 좀 찾아봐, 오이 간 거하고 꿀하고 그리고 또 뭘 넣으래?”

“그거면 된대요. 밀가루만 섞어서...”

얼굴에 발라주고 한숨 잠을 권하다.

그런데 에고, 온 얼굴에 덕지덕지 머리카락에도 더덕더덕 아주 일을 만들었네.

거즈를 붙이면 된다는 걸, 여기에서 아이 키울 적 썼던 기저귀감 천지인 걸,

나중에야 안. 그거 제대로 하러 또 모이기로!


‘강물’.

민주지산에 들었네.

“다섯이 여행가는 것 같아요.”

“정환샘과 희연샘이 먼저 가기 잘했네.”

아니면 차를 또 하나 움직여야 했으니.

오늘도 은주암골을 간다.

이 여름에만 세 번째. 선배들과 사전답사를 갔고, 아이들과 올랐고, 다시 어른들과 오른다.

낼모레 올 벗과도 가리라는데.

더러 아는 이들을 만나 인사도 나누다; 오래 살았네, 여기.

물꼬가 영동에 내려와 이 공간을 쓴지 무려 이십 년.

처음에야 서울과 두 살림이었으나 2001년부터는 이곳으로 아주 합쳤다.

평상에 누워 우듬지도 올려다보고, 판소리 한 대목도 들려주다.

“아, 지금 들어보니 심봉사가 뺑덕어미를 사랑했던 거네.”

늘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인교샘이다. 물꼬의 훌륭한 밥바라지 1인.

어느 새 산이 비었다.

“거주민만 이 시간에 들 수 있지.”

아이들이 올랐던 길을 따라 걸었다, 은주암굴까지.

그러고 보니 모두 162 계자 관련자들이다, 학부모이거나 선생이거나.

아이들을 얘기하다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네.

자신의 욕망을 바로 보기,

괜히 애들 갈구지 말고 저나 잘하고 살기, 저부터 잘 살기로.


절묘한 날씨라, 우리는 일정에 적확하게 열어 보이는 이곳에서의 날씨를

그리 표현한다, 하늘의 도움이라 여기고.

돌아와 학교 드니 소나기 쏟아지기 시작했던 거다.

“장작놀이 하지 말고 쉬어라 하네, 낼 새벽에 고추밭에 갈 거라고.”

따순 저녁밥상 앞에 앉았네.


다시 실타래와 夜단법석 이틀째.

나머지 사람들의 숙제를 듣다.

은용샘은 뚜렛장애를 앓는 아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연규샘은 162 계자를 하며 만난 장애를 가진 보육원 아이들 속에서

정작 자신의 어린 날과 물꼬에서의 치유를 들려주었고,

인교샘은 서울의 한 마을에서 물꼬에서 만난 것들을 잘 풀어내는 이야기를 꺼내다.

물꼬의 새끼일꾼들처럼 그곳에서도 형님들이 동생들을 돌보고,

물꼬에서 하는 여러 일정들, 열린교실이며 구들더께며 한데모임이며들이

그곳에서 더 넓어지고 깊어진 시간들을 들으며

물꼬가 더욱 느꺼웠네.

미자샘이 내내 좋은 어른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겸손하고 따뜻한.


가마솥방 부엌에 벌여놓은 열무김치거리들 앞에

철퍼덕 바닥에 앉아 하루재기를 하다.

내일 일은 내일 걸음에.

퍽 하고 쓰러져 자고 싹 하고 일어나기.

밤 1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고,

아직 덜했던 김치를 마저 담그다.

맛 뵈고 사람들 보내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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