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샘들이 물꼬의 많은 게 그립지만, 밥이 젤 좋다지만,

힘이 들지만 이 시간도 너무 하고싶다는 그 아침수행.

수련하고 명상하고.

내일 아침은 가까운 절집에 가서 해도 좋겠다 했다.


명상정원 ‘아침뜨樂’에는 굴삭기가 오지 못했다.

한 이틀 다시 손을 보기로 한 봄이었는데,

장비 쓰기가 쉽잖다, 굴삭기의 시절이니.

다음주에 오기로 하는데, 그것도 그때 가봐야.

될 일이라면 될 테지.


손이라도 붙으면 일에 속도가 붙는다.

이번 한주는 연규샘이 머물테다.

오전에는 달골 인도의 블록 사이 풀을 긁었다.

이때 긁어만 줘도 될 일이 번번이 뿌리 내리고 굵어져서야 어렵게 매는 풀이라.

마침 오늘은 연규샘이 그 일을 한다, 해준다.

학교 마당 한켠 소도의 돌탑을 만졌다.

의미가 의미인지라 오가는 아무나 같이 할 작업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물꼬 내부자(?)들이면 좋을.

대학생이 된 뒤로 물꼬 안살림을 이러저러 챙겨온 연규샘이다.

마침 잘 됐다 하고 쌓다 자리를 잡도록 기다렸던 돌탑을 다시 쌓기 시작한 것.

돌탑, 어찌 쌓으면 좋겠냐 산속에 사는 한 선배에게 여쭈었을 때

지극함이라 대답했다.

정성을 들여야.

아래서 돌을 올려주고 돌탑에 몇 발을 기어올라고 받아서 쌓아가고 있었다.

“앗!”

발을 옮기다 그만 무릎을 부딪히기도 하고. 멍들었겠다.

“비켜!”

어느 순간 균형이 무너져 몇 개의 돌덩이가 떨어지기도.

“그만하라는 말이네. 급히 할 일은 아니지.”

아무래도 다시 해체하고 쌓아야할 모양이다.

전문가가 쌓기도 했던 이곳의 돌탑인데 처음 직접 손을 댔던 일.

찬찬히 다시 시도해야겠다.


오후에는 김치오가리를 만졌다.

그러고 보니 몇 해나 연규샘이 와서 손 보탠 일이네.

빈들모임이거나 샘들이 들어와 있을 때 해왔다.

때가 잘 맞지 않아 5월이 되어서야 묵은지를 정리한 때도 있었다.

꺼내고 짜고 먹기 좋게 서너 쪽씩 넣어 냉동실로 보내고

얼마쯤은 큰 통에 넣어 냉장실에 넣는다.

다 짜고 나면 손목깨나 시큰거리는.


엊그제 도라지를 보내준 이웃에도 나눈다. 많으니까. 고마우니까.

김치찜도 만들고 볶고, 도라지도 무쳤다.

“교장샘, 어떻게 알았어, 오늘 우리 새 냉장고 들어오는데.

 물꼬에 산신령이 들앉았다니까.”

“내일 스님 예불 시간이어도 되고, 저희끼리 해도 되고, 여기 와서 수행하려는데...”

“하하, 정말 산신 기도 다니는 거 아니야? 낼 마침 우리 보살들 참선 첫 시간이야!”

같이 하기로 한다.

그런데, 나오는데 좇아오셨다.

“잠깐, 잠깐, 이거 좀 가져가.”

과자를 주신다. 연규샘이 과자 먹고 싶다 했는데 딱.

이러저러 여러 일이 잘 맞아떨어져준 하루였네, 그려.


십수년 만에 전화 하나 닿았다.

물꼬의 바깥 선생님으로 예까지 와서 수업도 해주셨던 분.

일간지에 연재하는 글을 보시고 한 연락.

늘 여기 있으니 여기를 통해 또 재회하는.

고마울 일이다.

그렇다, 물꼬 여기 있고, 나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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