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61700005&sat_menu=A073


...


몇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보도를 지켜보며 깨달았다. ‘여자치고 나는 운이 좋아 지금까지 안전하게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들을 낳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번뜩 놀랐다. 이게 다행인가? 아들을 낳은 게 다행인가? 그 생각에 가 닿은 스스로에게 당혹스러웠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한 남자애가 여자애에게 모래를 뿌렸다. 그 남자애 엄마가 말했다. “어머 어쩌나. 괜찮니? 네가 좋아서 그런 거야.” 여자애는 눈에 모래가 들어갔는지 울고 있었다. 여자애 엄마가 멀리 있었기에 아이의 상태를 살피지 못했다. 화가 났다. ‘좋아서 그런 거라니.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이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행동은 못하게 가르쳐야지.’ 그 남자애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애에게 가서 말했다. “네가 좋다고 친구를 괴롭히면 안되는 거야.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거야. 알겠니?”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그 여자애의 울음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좋아서 그런 거야.” 어릴 때는 ‘아이스케키’로 시작하지만 커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저지르는 수많은 장면을 살면서 겪었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자들도 말한다. “사랑해서 그랬다”고.


“너도 좋았던 것 아니야? 싫으면 싫다고 진작 말하지. 이제 와서 왜 이래?” 유치한 드라마 대사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 그런 일상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울고 있는 여자애처럼 뭐라 말하지 못한다.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너는 좋으냐고, 싫지 않으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다그치는 사회. 아이가 모래 뿌린 사소한 일로 너무 과한 결론에 가닿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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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여자로 살았다. 한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든, 여자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폭력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길러주고 싶은 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다. 어릴 때부터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폭력에 대응하고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응법은 무엇일까.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약하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약자들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을 엿볼 때 가장 절망스러웠다. 그 약자가 여성일 때는 수많은 기억들이 딸려 올라왔다.


‘미투’ 열풍에서 더 이상 참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오랜 폭력에 참아왔던 목소리들. 한국 여성의 99%가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들. 공감한다. “남자는 그렇게 해도 돼, 남자니까 괜찮아”라는 게 여전히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그게 당연한 결과다. 여성들에게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대해왔을 뿐. 센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추행은 더욱 추하지만 일상의 자잘한,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큰 타격을 줬을 폭력도 적지 않았으리라.


딸들을 아무리 진취적으로 키워도 아들들을 키우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 아들은 다르게 키우는가. 왜 아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을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가. 아들들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부터 키워야 한다. 설령 너는 재밌더라도 다른 사람이 싫어하면 멈추도록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 그게 시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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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2018.03.19 07: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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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이든 어른이든 

우리 모두에게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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