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24.해날. 맑음

조회 수 682 추천 수 0 2019.04.04 17:46:34


쉬어가자, 오늘은 휴일이잖아.

산골살이가 그런 날이 어딨냐만 그리 말하고 나면 조금 더 느긋하게 쉬어지는 듯.


학교아저씨는 읍내 장날이라고 나들이를 갔다.

달에 한 차례 나가서 바깥 음식도 먹고

목욕탕이 잘 있나 보고 머리도 자르고 오신다.

홀로 가마솥방 난롯가에서 바느질을 하였다.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내리하고픈 욕심이 인다.

서둘러 마무리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내리하지는 않는다, 한 자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사실은 내리 못한다. 다행이랄까, 몸을 쉬어주는 것에.

3월에는 아직 사람들 발길도 뜸한 때,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사과도 만화도 짖을 일은 없었다.

가능하면 바깥 움직임을 나서지 않고 몸을 널어 놓다시피 하는 요즘이다.

이 봄이 지나면 힘이 세질 수 있을 것 같다.

곧 아이들과도 힘차게 만날 것이다.

기락샘이 들어와 책방에 쌓인 여덟 상자의 책을 살폈다.

2002년 박사과정을 위해 시카고로 떠날 때 서울에서 내려 보낸 상자가

책방 벽책장 아래 벽장에서 자고 있었다.

“이적지 안 쓴 거면 별로 중할 것도 없을 걸. 그래도 살펴봐요.”

우리가 지닌 많은 물건들이 그럴테지.

두 상자로 남았다.


한낮, 겨울이면 묵던 된장집 방 하나에 들어 짐도 뺐다.

그래보아야 책상에 있는 책 몇 권과 잡다한 필기구, 그리고 서너 개의 옷이 전부였다.

재작년 이른 봄의 흔적을 지금에야.

죄송했고, 스스로에게도 미안했다.

나부터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보라.

나는 요새 죽을 준비를 하며 산다. 오늘은 죽기에 좋은 날!

그건 결국 잘 살려는 노력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96 165 계자 닷샛날, 2020. 1.16.나무날. 맑음 / ‘저 너머 누가 살길래’-마고산 옥영경 2020-01-28 2524
6595 똥 푸던 날, 5월 6일 옥영경 2004-05-12 2519
6594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07
6593 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옥영경 2004-03-10 2500
6592 대동개발 주식회사 옥영경 2004-01-01 2494
6591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477
6590 6월 6일, 미국에서 온 열 세 살 조성학 옥영경 2004-06-07 2461
6589 경복궁 대목수 조준형샘과 그 식구들 옥영경 2003-12-26 2448
6588 김기선샘과 이의선샘 옥영경 2003-12-10 2421
6587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38 계자 옥영경 2004-01-06 2411
6586 장미상가 정수기 옥영경 2004-01-06 2411
6585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옥영경 2008-01-03 2407
6584 물꼬 사람들이 사는 집 옥영경 2003-12-20 2394
6583 새금강비료공사, 5월 11일 불날 옥영경 2004-05-12 2389
6582 장상욱님, 3월 12일 옥영경 2004-03-14 2331
6581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316
6580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304
6579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293
6578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269
6577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25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