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공부 날적이

조회 수 862 추천 수 0 2003.07.16 21:30:00
4336. 7. 16. 물날

수요일인데도 아이들이 일찍 오지 않습니다. 방학 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은가 봅니다.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자, 오늘 간식은 우리가 직접 만들거야. 제목은 김밥이야. 손을 정말 뽀득뽀득 씻고 부엌으로 와."
신나게 세면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이 아니고, 상연이와 주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개구리 잡으러 갑니다. 주리는 한참을 김밥과 개구리 사이에 망설이더니 뛰어가는 상연이에 덩달아 뛰어갑니다. 연지와 해림이와 무연이는 손을 깨끗이 씻고 와서 손을 내 귀 앞에서 뽀드득거리며 보여줍니다.
재료를 방으로 들고와서 희정샘은 밥펴고, 연지와 해림이와 무연이가 속을 차례차례 넣고 마지막으로 희정샘이 돌돌 말면 끝. 좀 있다보니 상연이와 주리도 부리나케 뛰어들어옵니다.
근데 상연이가 김밥 싸는 밥상 위에 개구리 잡은 병을 "턱!"하고 놓는 바람에 애들이 놀랬지요.
통신문 작업을 있었는데 간식 드시라고 해림이가 부릅니다. 역시 사람 손이 많으니까 금방 다 쌌나 봅니다. 애들도 하나씩 말아봤다네요. 둥근 김밥, 작은 김밥, 삐뚜름한 김밥.... 그래도 맛은 끝내줍니다. 참, 김밥 재료는 어제 민근이 어머님께서 정말 속과 쌀과 달걀까지 필요한 재료를 모조리 챙겨주셨습니다.
한참 김밥을 먹고 있는데 주리가,
"선생님, 거지와 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지는 말하기 쉽고 거지는 아니니까 그지가 진짜 그지고 거지는 말이 안되니까 진짜 그지가 아니에요,"
상범 : 주리 말은 해석하기가 너무 힘들어.
희정 : 아, 알았다. 거지라고 말하는 건 진짜 거지가 아니고 거지는 잘 모르니까
그지라고 말하는 게 진짜 거지란 얘기지?
주리 : 아니에요.
민근 : 저 알았어요. 거지가 진짜 거지고, 그지는 진짜 거지가 아니고. 맞지?
주리 : 아니야.
상범 : 너무 힘들어. 도대체 뭐지?
연지 : 그지가 진짜 거지고 거지가 아니에요.
입에 김밥이 가득 차 말을 못하는 해림이가 급기야 종이와 연필을 들고 와서 써 보여줍니다.
"거지가 진짜 거지고 그지가 진짜 거지 아니다."
상범 : (주리에게 글을 보여주며) 이거 맞아, 주리야?
주리 : (글을 천천히 읽으며) 음, 아니에요.
상범 : 봐, 아니잖아. 나는 연지와 생각이 똑같애. 아마 이게 맞을거야.
종이에 "그지가 진짜 거지고 거지가 진짜 거지 아니다."라고 써서 주리에게 보여줬습니다.
주리 : (역시 글을 천천히 읽으며) 아니에요.
우린 모두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있는데,
주리 : 선생님 제가 다시 설명해줄게요. 그지? 하고 말하면 맞잖아요. 거지? 하면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가 그지가 진짜 그지고 거지하면 이상하니까 거지는
아니에요.
혹시 이해되시는 분? 그러니까 주리는 저희가 생각한 정말 '거지'를 말한 게 아니고, 발음상 '그지'를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거지'가 떠올랐나 봅니다. 그런데 주리에게 '거지'는 아닌 거지요.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다 먹은 아이들은 어제 한 비석치기를 또 하잡니다.
"샘은 김밥 좀 더 먹을테니 너희들이 먼저 하고 있어."
"줄을 그어 줘야해요."
"줄? 너희들 걸음으로 여덟 걸음 걷고 그으면 돼."
휘리릭- 애들이 뛰어나갔습니다.
무연이와 민근이가 한 패고, 해림이와 연지가 한 패입니다. 뭐 상연이와 주리는 다시 개구리 잡느라 정신없고. 물통에 물을 퍼서 다른 구덩이에 붓고, 그러면서 개구리집을 만들고... 근데 중간에 상연이가 비석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인지 형길 샘을 붙잡고 비석치기 하러 갑니다. 혼자가 된 주리.... 주리 옆에 갔더니,
"선생님 왕개구리 없잖아요!"
"아마 다른 데 갔나봐."
"여기가 집이라면서요!"
"아니, 그러니까 근처 자기 집에 갔나봐."
혼자 놀던 주리는 그만 물웅덩이에 신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발도 찾아주고...
"선생님, 개구리는 어떻게 뛰어요?"
"뒷다리로 뛰지."
"앞다리는 그냥 이렇게 하구요?"
"응, 앞다리는 그냥 도와주기만 하고, 뒷다리가 크고 힘이 세서 뒷다리로 뛰는 거야."
"선생님 개구리 잡아줘요. 저는 눈이 나빠 잘 못봐요."
개구리 잡아서 눈이랑 코랑 입이랑 뒷다리랑 앞다리도 보여줬습니다.

애들 비석치기 정말 신나게 합니다. 어제는 잘 했는데 오늘은 잘 안 되는 해림이는 내내 짜증 내고... 같은 패인 형길 샘이 해림이 달래고,
애들이 배에다 올리고 가는 걸 정말 힘들어하는 데, 상연이는 불뚝 나온 배 덕분에 안 떨어지고 잘 갑니다. 놀라워하는 애들과 같은 패 아이들 사이에 '귀하신 몸'으로 추앙받은 상연이... 하지만 배에다 돌 올리고 가는 상연이의 정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란... 기도하듯 두 손 꼭 쥐고 어깨에 돌 올리고 가는 무연이의 모습도... 저는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정말 보기만해도 너무 재밌습니다.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거의 6시가 다 되어서 바느질 하러 들어왔습니다. 애들 치마 바느질이 아직 다 안 끝났거던요. 그런데 상연이는 치마가 집에 있어 못했습니다. 상연이는 옆방에 누워서 딩굴딩굴거리며 혼자 놀고 있습니다. 좀 힘들기도 하고 해서 그런가 봅니다. 제가 상연이 옆에 가서 같이 누웠습니다. 누워 상연이 볼도 만지고 코도 눈도 귀도 만지고 손도 만지고 코도 만지고... 정말 상연이는 잘 살진 아기 돼지같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딩굴딩굴 누워 있는데, 온 몸에 천을 휘감고 뛰어들어온 주리가 던진 말 한마디,
"오! 분위기 좋은데!"
무서운 주리지 않습니까.... 그러더니 자기가 감고 있던 천도 이쁘게 덮어줍니다.

상연이와 주리와 쿵쿵따를 했습니다.
"근데 선생님, 세 자도 되고 네 자도 되고, 두 자도 되고, 다섯 자도 돼요."
상연이의 재빠른 말입니다.
한참 쿵쿵따를 하고 있는데, 연지도 오고 민근이도 오고, 무연이도 오고, 다 같이 하고 있는데 주리가 더 재밌는 걸 갖고 온다더니 '쌓기놀이'를 가져옵니다. 같이 쌓기놀이 하며 하나씩 올리다가 무너지면 그 사람이 엉덩이로 이름 쓰기 하기로 하고. 무연이와 상연이만 계속 돌아가며 이름 쓰고... 어쩌다 걸린 주리는 엉덩이로 이름 쓰다 넘어지고... 주리는 치마 다 만들어 입어봤는데 정말 이쁩니다.

방과후공부도 이번 주면 1학기가 끝납니다. 오늘 통신문을 나눠주며 금요일날 매듭잔치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돌아가며 하루재기 하는데, 또 주리의 일침,
"오늘요, 상연이 오빠랑 개구리 잡기로 했는데 중간에 상연이 오빠가 혼자 비석치기 하러 갔어요. 그래서 상연이 오빠가 후회할 거에요."
중간에 배신한 상연이를 잊지 않고 있던 주리, 정말 무섭습니다.^^

옥상 방수공사 하던 아저씨들이 빵을 주시고 갔습니다. 나눠 먹었는데 상연이가 오래도록 먹고 있습니다.
"상연이 오빠, 빵 좀 줘."
먼저 손 내미는 주리,
"나도 좀 줘."
덩달아 내미는 무연이,
"좀 줘."
"좀 줘."
말없는 상연이...
"아냐, 내가 양보할게. 선생님 제가 양보할게요. (무연이 보고)욕심쟁이!"
졸지에 욕심쟁이가 된 무연이...
오늘은 집에 좀 늦게 돌아갔습니다. 그 바람에 기은이도 연지 데리러 오고, 주리 언니 남정이 언니도 나와 있고.... 미안하지만 어쨋든 너무 재밌는 하루였습니다. 참, 연지와 해림이는 비석치기 복수혈전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둘이 남아서 비석치기 연습하고...

그나저나 오늘 준 통신문을 부모님께 꼭 보여드려야 하는데, 우리 애들이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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