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늘을 캐야지.

마늘밭 풀을 맸다.

아침 10시 비가 시작되었다.

비가 올 땐 집안으로 들어와 일을 하라는 때지.

달골 기숙사 햇발동과 창고동 내부 청소를 하기로 한다.


오후에는 방문객들 있었다.

밖에는 비 내리고, 창고동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차가 맛났네.


사람들이 물꼬를 다녀가면 여러 생각이 든다.

보는 눈이 제각각이라.

누구는 낡은 것만 보고,

누구는 낡은 곳에 사람 손이 닿아 빛을 내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제 양껏, 제 가치관대로 본다.

물꼬는 물꼬의 가치를 아는 이의 눈을 통해서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일찍이 김춘수의 시 꽃이 그런 이야기를 담지 않았던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욕망을 또한 읽게 된다.

이것도 있어야 되고 저것도 있어야 되고,

이래야 할 것 같고 저래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그게 실체가 맞는가?

정말 사람살이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으며,

사람의 마음(연민이라거나 염치라거나)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아닐까.


오늘 만남은 마음을 낸 만큼 썩 소득 없는 만남이었다.

많이 들어주지 못했다.

뭔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였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주로 듣는 데 충실한데

오늘은 말하는 데 더 급급했네.

이이가 받아들일 틈이 너무 없구나, 그러면 또 할 수 없네 하고 접었을 것을

특별히 이네를 부탁한 분이 계셔서 마음을 쓴다는 게 그리 되었다.

그들을 받아들여주지 못해 미안했네.

세상 흐름 좇아간다고 애쓰고 짠했는데,

위로도 대안도 주지 못한 만남이었다. 나는 오늘 실패했더랬네.

서로 귀하게 냈을 시간, 아쉽다.


사람들이 다녀가면 물꼬의 낡은 해우소에 대해 또 생각하네,

정녕 사람에게 무엇이 더러운 것인가 하고.

아이들하고도 자주 나누는 이야기이다.

지나친 욕망이야말로, 작고 여린 것을 함부로 대하고 해치는 마음이야말로,

얄팍한 권력을 이용해 힘이 약한 이들을 업수이 여기고 그들에게 행사할 때

그 치사한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치졸하고 더러운 행동인가.

“사실은... 물꼬 해우소 재래식이라고 놀라잖아요.

저도 다른 곳 재래식은 잘 못가는데, 물꼬는 엄청 깨끗해서 놀랬어요.”

물꼬 품앗이샘들이 더러 하는 말이다.

누구에게는 그렇고 또 다른 누구는 그렇지 않을 테다.

마누라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만 보고도 절을 한다는 것과 같은 것 아닐는지.

물꼬 화장실은 더럽지 않다.

화장실이 문제이겠는가, 어디. 냄새야 좀 난다만.

물꼬에서는 아이들 뒷간의 똥통과 오줌통을 끌어내 발효시켜 거름으로 만든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어떻게든 삶의 찌꺼기들을 마지막까지 그렇게 책임져 보려 한다.

우리 집 화장실이 수세식이라 하여 내가 눈 똥과 오줌이 사라지는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 집에서 쓰레기를 치웠다고 그 쓰레기가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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