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마지막 흙날 해날에

조회 수 1056 추천 수 0 2003.09.29 23:50:00
우르르 사람들이 왔고
스르르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논두렁 몇 분이 들어있는 한 모임을 대해리 내려와서 가지셨습니다.
어른 다섯이 왔더랬지요.
입장권으로
물꼬 대문에서 뻘건 색(하다가 유일하게 아는 과자 초코파이)을 내밀고
예선 고기 구경 어려울 것 미리 아시고 고기 실어서 오셨지요.
술은 절대로 못보지 싶다고 병맥주도 어불러.
(아, 가시고서야 담아놓은 과일주 드리는 걸 잊었음을 알았지요.
저희 살림이야 굳혀서 좋지만...)
두부전골과 물꼬에서 기른 채소들로 만든 겉절이 맛나게 드시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풀 베느라 글쎄 공양주의 소임을 잊고 소홀하게 차렸던 밥상에도
어찌나 맛있어 해주시던지...)
밤늦도록 모임을 했는데,
물꼬의 하루가 아침 여섯 시면 시작되잖아요,
그래도 좀 배려한답시고 그 시간이 한참은 지나서 깨웠습니다.
아, 맘 약한 물꼬, 아니 너그럽기도 하지.
여기 국밥 얻어먹으러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물꼬의 국밥을 아침으로 역시 맛나게들 드시고
잠자리 청소에 이어 이번에 할당된 일, 연탄 져 올리기 했지요.
밭을 지나 가파란 작은 언덕길을 넘어 보일러실을 돌아.
다들 몸 온전하실지...

우리의 새끼일꾼 운지의 어머니이자 논두렁 신현희님도 오셨습니다.
한참 염색공부하신다는 소식 듣고
걸음하셔서 가르쳐달랬지요.
볕좋은 곳에서 실습하실 기회를 가지는 걸 영광으로 아시라고
되레 강사료 한 푼 못드리는 미암함을 슬쩍 감추고.
꼬박 밤을 낮삼아 정연(염색이 잘 먹게 천을 삶고 씻는 작업)을 하시고
해날에는
준비해둔 호도껍질을 가지고 철매염 백반매염으로 종일 물들이셨습니다.
밥하며 새참이며 한다고 오가느라 조수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홀로 물꼬 천까지 물먹이느라 고생을 더하셨네요.

해날 점심.
물꼬에 지난 여름 뒤로 생긴 소나무 찻집을 아시는지.
게서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처럼 해바라기 꽂힌 꽃병 놓고
한쪽에서 구워낸 고기들을 드셨지요.
역시 가시고야 알았습니다,
기껏 끓여둔 된장찌개는 왜 구경도 못하셨답니까.
(영만이형, 어이 된겁니까,
형이 날랐던 게 그 뚝배기였는데,
도대체 엇따 두셨더랩니까)

모두 고맙습니다,
덕분에 겨울 또 잘 날 수 있겠지요.
맨날 흉내만 내던 물들이기도 좀 나아질테구요.
가시는 걸음에
인삼뿌리 못지않은 저희 밭 도라지도
말로만 인사드리고 말았습니다.
담에 맛보러 오셔요.

다시 고맙습니다.
두고 두고도 고맙겠습니다.
모두 이 가을,
저희 마당처럼 풍성하소서.

; 대해리 울타리찻집에서

덧붙임.
그래도 발라주시지 못한 사택 2번 3번 벽지는
원망을 품고 말려있답니다.
절대 절대 제가 아니구요, 걔들이 그렇다니까요.

승아

2003.09.30 00:00:00
*.155.246.137

오랜만의 옥선생님의 글~ㅋ
영동에도 가보고 싶은데, 당분간 손님은 안 받으신다고;;

옥영경

2003.10.01 00:00:00
*.155.246.137


승아야----
참 그리운 이름이다.
내가 '나'로 사는 것에 자부심을 더해주는 사람,
그 가운데 하나가 너였다, 물론 지금도.
어른들은 잘 계실까, 동생은?
아버님 어머님이 얼마나 생생한지...
앞뒤 보지 말고 다녀가렴.
'물꼬를 찾아오신느분들께'를 먼저 읽고.
열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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