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는 밥 먹고 해주는 청소에다 애들만 가르치면 되는데 무에 힘들 게 있는가,

제도학교에 와서 자주 하는 농이다.

물꼬에서라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부수고 고치기도 하고,

그리고 아이들도 만나야 하는 삶.

오늘은 점심에도 저녁에도 차려주는 밥상 앞에 앉았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주부가 무엇인들 맛나지 않을까나.

게다 한 번씩 급식실이 주는 뜻밖의 감동이 있는.

급식에서 조리사 샘이 고기를 빼고 국을 따로 끓여주었다.

영양사샘은 국그릇에 고기 대신이라며 두부조림을 챙겨다주고

조리 보조샘 역시 다른 국그릇에다 양배추찜을 내주었다.

단체급식에서 이런 호사를 다 누리다니!

하려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지만

하려들기가 또 쉬운 건 아니지.

물꼬 일하고 사는 사람에 대한 예우이기라도 한 양 상(prize)처럼 받았다.

저녁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수행센터의 어르신이 팥죽을 끓여주셨다.

밥힘이 절로 생긴 하루였더라.

 

2교시 예능실에서 특수아를 포함한 1학년 아이들의 풍물수업이 처음 있었다.

이번 학기 아무도 쓰지 않는 예능실,

숲이며 운동장이며 놀이터며 학교를 구석구석 참 잘 쓰고 산다.

불을 켰지만 어둑한 공간,

자폐를 앓는 진새가 무섭다고 들어가지 않는다 했고

해서 교실로 와 손뼉으로 장단을 쳤고,

이어 가져온 장구와 채를 가지고 인사굿을 두드렸다.

아이들이 먼저 하면 잘 따라 하니

다음 주는 아이들을 앞세워 예능실에 먼저 들어서자 한다.

3교시는 6학년 국어수업을 도서관에서 하고 특수학급으로 돌아오니

수업을 마친 진새가 책상 위에서 움직이는 지우개청소기를 겁나하고 있었다.

안고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니 스르르 내려와 무릎베개를 하고 눕네.

아름다운 노래들이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주나니

진새랑 노래를 여럿 부를 이번 학기이겠다.

 

제도학교에는 갖가지 자리의 비정규직이 있다.

코로나19로 방역을 위해 또 들어오는 몇 사람이 있는.

인근 도시에서 오는 한 분은

문손잡이며 여기저기를 소독제로 닦고 다니신다.

학급에도 들어와 책상도 닦아주는.

그러면 잠깐 선 채로 내주는 물 한 잔을 혹은 가벼운 먹을거리 하나를 드시기도.

아침 일찍 출근 하는 그라 1학년들이랑 노는 우리 풍경을 늘 보는.

일찍 학교에 들어서는 이들-학교지킴이, 청소여사, 발열체크담당자-은 또 이들대로의 일종의 가까움이 생기기도.

아이들한테 어쩜 그리 잘해요?”

, 그런가.

찬사로 들었다.

그저 잠시 아이들과 노는 것만으로도 드는 찬사라.

하기야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딨는가,

적어도 한가해서 아이들과 노는 건 아니다.

교사도 오지 않은 빈교실에서 무려 한 시간여를 우두커니 앉았는 아이들을 보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놀이터로 가는 걸 일정 하나로 삼은 아침이다.

 

6.10 기념일.

이한열기념관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같이 살자' 외침 오늘에 더 큰 울림" 33년 전 6월항쟁 불붙인 이한열

전두환씨가 1980518일 광주에서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어요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1'박종철 고문치사'가 발생하고 같은 해 6월 한열이가 쓰러졌어요

학생들은 '헛소문이 아니구나'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부구나' 확신했죠.”

사회의 외곽지대에서, 무풍지대에서 스스로 망각한 채 살아왔던 지난 날이 부끄럽다’,

5월에 쓴 이한열의 마지막 글이었다.

국내 주요 신문들은 보도지침으로 싣지 못하다가

이튿날인 11일부터 유혈이 낭자한 이 열사 피격 사진을 지면에 게재했고

넥타이 부대까지 합류하면서 6월 항쟁은 활활 타올랐다.

1987629일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대통령 직선제 수용하는 ‘6·29 선언을 했고,

전두환 정권은 간선제 헌법인 '호헌 선언'을 철회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다.

한열이가 생전에 쓴 글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세요?

'부끄럽다''같이 살자'입니다.

특히 한열이는 광주 출신이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부끄러워했어요."

부끄럽다와 같이 살자. 한열이의 이 같은 메시지는 2020년 한국 사회에도 유효합니다.

1987년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위협받는다고 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 또 다른 조건인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2020년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준비가 돼 있을까요?

또 그러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2020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소환되고 있는 이한열이었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일어나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이한열 추모가를 불러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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