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생즙을 하나 마시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 거라.

이거 하나 먹는다고 몸이 얼마나 좋아지려나 싶은.

그래서 뭐가 좋더라는 거 좋다니까 먹긴 하나

그것이 가져올 좋음에 대해서는 그리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건 그러한데 나쁜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싶데.

같은 양은 좋은 것에는 별 반응이 없을 사람 몸이지만

좋다는 것의 양과 같은 양의 나쁜 것이더라도 뭔가 바로 반응이 남는다는 생각.

그러니까 한 컵의 똥물에 열 컵의 맑은 물을 붓는다 한들 여전히 똥물이지만

똥물 한 방울만으로도 맑았던 한 컵의 물이 똥물인 거라.

몸에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이 그 같지 않을까 싶었네.

좋다는 건 들이부어도 좋기 힘들지만

나쁜 건 하나만 던져 넣어도 불씨처럼 온 몸을 나쁘게 다 태운다는 느낌.

나쁜 건 피하는 게 상책이겠고,

좋은 건 쌓아야 좋아지겠더라.

사람 행위도 그렇지 않은가 싶데.

한 번을 잘못해도 잘못한 거고

좋은 일은 쌓아야 비로소 덕이 되는.

수량적으로 따지자면 억울한 바가 없지 않겠으나

삶은 뭐 언제나 수량적인 문제이기보다 질적인 문제이니까.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간밤이더니 야삼경에 눈이 떠져서는

아침까지 책을 들여다보는데,

침침해진 눈으로 활자가 더는 들어오지 않을 때 고개를 드니

어느새 밖이 훤했다.

뭔가를 하면 그 결과를 들여다보며 뿌듯함을 또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얼마 전 입체프랑스자수를 놓아 만든, 보잘 것도 없는, 바늘쌈지 하나를

여러 날 꺼내보며 벙긋거렸네.

자기가 애쓴 시간이 거기 남았으니.

그러고 보면 밥노동의 결과는 그것이 이내 사라짐으로 인해 그리 허망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사이집 가장자리도 뿌듯하게 본다.

어제 저녁답에 마지막 남은 하늘빛에 기대 사이집 가장자리 편백들에

지줏대를 다시 박고 거기 중심 줄기를 야물게 끈으로 두세 군데씩 묶어주었더랬다.

곧게 세워놓으니 어찌나 잘 생겼던지,

늠름했고, 하여 든든했다. 울의 기능을 이제 좀 하련다 싶은.

이른 아침바람은 벌써 차서 점퍼를 걸치고 나가 한 바퀴를 돌았더라.

언제 30도를 넘어갔더냐 하고

백로 앞두고 뚝 떨어져 내린 기온.

 

9월에 와서 머물기로 한 한 가정이 못 오게 되었다는 연락이다.

남편이 여기까지 데려다주고 데려가야 하는 상황은 둘째치고라도

엄두가 안 난다는.

아이 둘을 데리고 여기 필요한 것들 죄 실어 들어오는 게.

22개월 작은 놈 기저귀만 해도 어마어마.

큰놈은 온라인학습 중에 가지는 과제들이 있어 그런 것들까지 챙겨오는 게.

내뛰면 다 돼,

하지만 바로 그게 쉽잖은.

젊은 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같이 맞았고,

대학생 때 정말 나중에 여기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던 그였다.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들 다시 만나 고마운.

물꼬가, 우리들이 함께 보낸 시간들이, 그리고 지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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