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 공부방 교사일지 가운데서

2003년 10월 23일 나무날

3시 5분 전 아이들이 왁자하게 들어오다.
학교 이곳 저곳을 누비고 3시 30분에 모이다.
요가와 명상, 그리고 동화책을 읽다.
3시 50분 간식. 무지샘이 호박부침개를 내오다.
4시 25분부터 공부, 과학.
하기야 지들이야 과학인줄도 모르고 놀았겠지만.
나무와 풀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
가을엔 왜 낙엽들이 지는가,
어떤 나무가 어떤 잎들을 갖는가,...
세 패로 나뉘어 마을을 누비며 나무마다 잎 두 장씩을 챙겨오다.
나서는 길에, 오늘 나뭇잎을 껴넣어 창호지를 바른 사택 방문도 보여주고.
"와!"
감탄을 자아내는 아이들.
5시 15분, 하루재기.
"나뭇잎들이 다 다르고 예뻤어요."
"무연이 형이 우리를 따라와서 싫었어요. 우리가 어떤 잎 따나 볼라고, 스파이예요, 스파이!"
다음 번엔 열매들을 훑고 다녀도 좋겠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하하하. 호시탐탐 노려왔습니다, 이 기회를. 저도 대해리 공부방 날적이 한 번 써보고 싶었거던요. 우리 아이들 이름자를 읊어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했더랬습니다. 오늘은 상범샘 희정샘 그리고 하다가 엊그제 논으로 날아올랐던 차를 이곳저곳 살피러 가서 하루 해가 다 넘기고 오게 된 덕입니다.
오지 않은 아이가 있을라치면 가까이 와서 까치발로 그의 몫까지 자기가 (요가랑 명상)하겠다고 속삭이는 우리 형민이. 저러다 아픈 다리 덧나지나 않을까 걱정되리만치 너무나 진지한 그를 보고 있을라치면 세상이 얼마나 환해지는지요.
6학년인데도 나이값 못한다고 여섯 살 하다한테까지 잔소리를 듣던 민근이는, 와, 새끼샘노릇한다고 얼마나 컸는데요. 오늘도 패를 만들 때 해림이와 주리를 건사하는데, 나 참, 사사건건 그리도 싸우고 목소리도 크더니만, 하하, 방에서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 부르는데도 점잖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니가 새끼샘으로 날 좀 도와야겠다 하던 날,
"그럼, 민근이 오빠한테도 선생님이라 불러야 돼요?"
"아니지, 오빠지."
발끈하던 해림이도 새끼샘 대접을 잘해줍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니까요. 어떤 사람들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국회모라든가 모의사당이라던가 뭐 그런데 모이는 이들은 안그런 모양입디다만.
무연이, 맨발로 운동장으로 마구 달려나가던 이 선수는 이제 그런 짓 안한다니까요. 대단한 변화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집안싸움(상연이랑)도 덜한답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을 줄을 아는 거지요. 우리 무연이요, 무엇보다 동화를 읽어줄 때를 퍽이나 좋아하는데 아직도 이런 옛얘기에 귀를 쫑긋거리는 아이가 있다 싶으면 살맛이 나는 겁니다. 뭐 그래도 오늘 상연이를 울렸던 모양이지만.
우리 상연이는요, 오늘 울면서 들어왔습니다. 눈물 닦아주고 안아주고 그리고 뭔 일이냐 물었지만 울음 섞인 말은 이미 말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틀림없는 건 무연이가 울렸다는 거였지요.
늘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해림이는 커서 헤어디자이너가 꿈이랍니다. 오자마자 아이들이 학교를 휘젓고 있을 때 가끔 수학을 같이 하는데 영민하기도 하고, 수학을 꽤나 즐거워했던 옛생각을 하면서 학교가 세워지고도 수학과목을 맡고 싶게 합니다. 좋은 관계라는 게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는 거란 생각을 새삼 더하게 만들었지요. 이 아이 참 야무집니다.
우리의 주리 선수, 입이 여뭅니다. 생각주머니도 크구요, 요새 질기게 질기게 뜨개질을 하는데, 그거 목도리가 되고 말지 싶더라구요. 가끔 나이답게 뚱할 때도 저만치서 제 고집으로 꼼짝도 안하던 녀석이 이제 부르면 모여앉은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올 줄도 아니까요.
대원이, 명상할 때 어깨가 가장 굽어있는 아이라 쳐다보면 짠해집니다.
"할머지 할아버지 지켜줄 만큼 네가 용감해져야해."
용맹함을 키우자 합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그가 목소리를 키울 수 있어서 되려 샘들이 고마워합니다.
우리 두용이는 꼭 꼬릿말을 달아서 다른 아이들과 적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아는 게 많아서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녀석 감기든 아이가 있으면 누구보다 제 옷 먼저 벗어서 덮어줍니다. 말 안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아이를 무척 힘들게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즐겁게 하고 마음이 상했을 때 빨리 감정을 수습할 줄도 압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과 오고가는 진한 교감, 그래요, 지난한 물꼬의 세월(그러고보니 십년도 더 된 일이네요)에서 바로 저 아이들이 위로고 위안이었고 그리고 우주였습니다. 말하고 있으니 왕진이랑 진아 그리고 형주도 보고싶네요. 오래되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따라 가장 중요하다는 과목이 다르기도 하대요. 연극을 하고 있을 땐 마치 연극이,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땐 마치 글쓰기가 뭐 다른 모든 과목을 아우를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요새는 명상과 요가가 그러합니다. 아, 동화도 읽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영어도 하고 수학도 하네요.
명상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들 정말 뭘 해도 하겠구나, 그들 삶에 무한한 가능성과 긍정성, 그리고 힘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 눈물이 다 글썽여진다니까요. 혼자서 그 광경을 보는 아쉬움이란...
얼마 전 몸을 배배꼬아대는 아이들한테 확신에 찬 목소리에 장담을 했더랍니다. 이거 제대로 하면 다음달부터 성적 그것도 당장 올라가, 장날에 찾아왔던 만병통치약 엿장수처럼.
"선생님 저 요즘 공부 잘해요. (명상이랑 요가 잘하니까)"
자세 젤 바른 해림의 증명이 있었습니다.

동화읽기,
고등학교때 수학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하나 오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계산이 안돼서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문제 이해가 안돼서 못한다고, 그건 결국 국어가 안되는 것 아니겠냐, 그러셨더랬지요. 동화는 그 문제를 극복해주는 좋은 해결사일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런 예가 아니더라도 동화읽기의 장점이야 어데 열손가락에 다 헤아릴라구요.
책을 읽고 있노라면, 비죽비죽있다 멀리서 딴짓하던 녀석도 어느새 고개 쑤욱 내밀고 저가 하던 일 멈추고서 몸을 이쪽으로 확 기울여 듣고 있고...
정말 빨려든다, 그게 어떤 건지를 실감합니다. 이 맑은 아이들 속에 있으면, 그 맑음을 지켜주고 싶다,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 사명감 같은 게 마구 들어버립니다.

이야기 들려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지요. 그냥 사는 얘기들을 하고픈 건데 그날 하려는 얘기에 적합한 얘깃거리를 만들거나 예전에 읽은 동화 가운데 생각을 자아내거나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 절기에 대해서도 입에 올리고 그냥 사람이 사는 데 한번쯤 생각했으면 좋겠는 일들을 가볍게 옛이야기처럼 들려주는데, 재미라고는 별반 없을 것 같은데도 나름대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게 재미가 있어집니다.
하도 내꺼야 라고들 싸워대서 레오 리오니의 동화 하나를 말해주던 참인데. 사이사이 나오는 의성어 의태어들을 왕창같이 했더니 그게 또 대단히 신나는 동참이 됩니, 함께 하는 공부, 저도 신나고 나도 신나는!

영어,
처음에 물론 쉽고 재밌어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낱말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상황에서 그 말들을 문장째 알아가는 건데 그 벅찬 것을 재밌어한단 말입니다. 낱말 하나 하나의 뜻은 제대로 알지 못해도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가운데 그만 해석을 해버린다니까요.

수학,
혜림이 나눗셈 들어가던 날 마침 간식으로 은행을 구워먹었는데, 그걸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놓고 그냥, 그냥 나눗셈이 돼버렸다니까요. 혜림이가 이해가 빠르다손 치더라도 주위에 널린 걸로 저는 공부인줄도 모르고 수학을 해버리는 거지요. 도형도 그렇게 공부를 했더랍니다.

아이들과 사는 게 일이고 놀이이고 삶인 사람이라
애들과 날마다 마주 앉아 신이 난다는 말이 이리 길고 길었네요.
대해리 넘치는 가을걷이의 풍성함에
우리 아이들이 한자락 보태고 있는 풍경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있어서 고맙고
물꼬가 있어서 고맙고
그리고 이렇게 이 가을날을 이고 살아서 고맙습니다.

진아

2003.10.24 00:00:00
*.155.246.137

요즘 자유학교는 요즘 공부시간이 기네요.....오늘은 학교공부를 1시에 끝나서 영동 도민체육대회에 갔어요....
선생님도 온줄알고,, 찾았는데/// 그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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