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날적이 10월 28일

조회 수 927 추천 수 0 2003.10.29 09:47:00
2003년 10월 28일 불날 바람 많음

3시 좀 지나서 아이들 들어서다.
민근, 무연, 상연, 해림, 주리, 형민, 대원, 왕진, 영준, 준성, 그리고 하다.
어, 두용이, 형주가 안왔다!
형주는 눈높이 때문이라고 자주 그러지만 두용이는 무슨 일?
아이들도 모른단다.
3시 40분 요가 명상 동화읽기 시작하다.
4시 10분 간식
4시 30분 고학년 글쓰기, 저학년 풍물.
상범샘이 학교 밖 일이 있어 교장샘이 글쓰기 들어가다.
6시 10분 전 아이들 학교를 나서다.

방금 상범샘한테 오늘 낮의 한풍경을 들려주었습니다.
밤 1시도 한 참 넘은 이 시각 교무실에는
웃음이 가라앉질 않고 있습니다.
음...
요가를 시작하기 전 해림이가 수학공부한다고 숙제종이를 꺼냈거던요.
해림이랑 상 앞에 앉아있으면
잘 놀고 있던 녀석들도 올망졸망 붙어서 죄다 들여다 보는데,
그래서 별로 길지도 않은 상 저쪽 끄트머리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데,
(하다부터 머리를 들이밀지요, 큰 놈들도 아는 체 하느라 들이밀지요,...)
이게 얼마나 재밌어보이는지
아침마다 여섯 살 하다는 1학년 수학와 수학 익힘책을 들고와
제발 수학 공부 좀 하자고 잠을 깨운답니다.
한참 문제를 푸는데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해림.
"야, 내꺼 베끼지 마!"
저쪽 상 끝에서 언제 왔는지
형민이가 문제지를 꺼내 해림이 꺼를 복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형민이 쭈빗해진 것도 잠시
얼른 마지막 문제까지 옮겼더랬습니다.
"형민아, 너도 수학 같이 하자."
또 그건 싫다네요.
해림이는 요새 수학에 자신이 엄청 붙었고 너무나 재밌어 한답니다.
형민이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먼길 가는 이가 있어 서둘러 깬 아침이었습니다.
비 한창이데요.
해가 들기는 했어도 바람 거칠어
낙엽들이 비처럼 후두둑거렸습니다, 죙일.
운동장은 잎 길입니다.
이 고운 곳에 아이들이 들어섭니다,
어떤 것이 그보다 고울지요.

고자질은 늘 교실의 빼놓을 수 없는 메뉴아니겠습니까.
다 말하기도 전에
"에이..."
그러면서 슬쩍 네 마음 다 안다는 표정을 짓고
안아주면 그만 미끄러져 저만치 가서 또 놉니다.
그 억울함이야 짐작 못할 것 없거든요.
말을 다 해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하소연이 풀렸다 싶으면 문제의 대부분이 그냥 풀어지니까요.
오늘도 무연군을 시작으로 우리의 대원선수,
뭐 줄줄이 다 풀풀풀 풀렸습니다요.

시비를 가리는 것도 교사의 큰 역할 가운데 하나지요.
이건 황희정승 흉내를 한없이 내야합니다.
그런데 이 시절 이 교실에서도 하하, 유효하다니까요.
"니가 때렸다면서요?"
"아니요, 쟤가 먼저 그랬어요."
"그래? (다른 아이를 돌아보며) 니가 먼저 때렸다는데?"
"아니예요, 제가 걸어가는데 발을 걸었단 말예요."
"그래? (다시 다른 쪽을 보며) 니가 발을 걸었다면서?"
"아니요, 쟤가..."
그렇게 양쪽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저들이 더 지쳐서 관두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수를 내보기도 합니다.
"딴 말 말고, 걸긴 걸었지?"
"네. 그렇지만..."
"딴 거 다 놔두고, 발을 건건 맞지?"
"잘 못했네, 그러지 마라."
"예. 그런데..."
"알았다니까. (다른 편을 보며) 너는 먼저 때린 것 맞지?"
"아니, 그게..."
"다른 소리 다 빼고 때렸어, 안때렸어?"
"때렸어요."
"잘못했네, 때리지 마라."
그러면 화해가 또 됩니다.

아주 자잘한 것도 문제가 되고 복장이 터지는 일상이었다가도
어른들과는 달리 상처는 결코 입히지 않는
품 넓은 아이들 세상에 그만 맘에 화안해집니다.
그 세계에 함께 있으면 용서가 얼마나 큰 기술인지
새삼 배우다마다요.

저학년 풍물에서는
저 못하면 그만 손을 놓아버리는 주리가
오늘은 희정샘이랑 따로 배우기도 했답니다.
네 마디를 해야한다 하면 네 번을 치는 걸로 해석한다던 주리는
이제 1학년이거든요.
그러니 어지간히 어려웠던 게지요.
어렵다 도망다니던 주리가
글쎄 채를 잡고 장구를 쳤다네요.

고학년 글쓰기에서는
이야기 이어달리기를 했는데
지리할 수 있는 글쓰기를 재미나다 하니 반은 성공을 한 셈이었습니다.
띄어쓰기, 맞춤법은 큰 과제다 싶구요.
(무슨 말인가 알아보긴 해야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이들 글도 그렇데요,
자기 세상이 드러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민근이 같은 경우엔 늘 하다랑 아웅다웅인데
이야기에서도 하다를 등장시켜 실컷 분을 풀기도 하고.
글이란 게 물론 잘쓰고 못쓰고는 있겠지만
쓰는 이의 세계가 드러나기 마련인가 봅디다.
우리의 무연선수
심오하게 오래 뭔가 고뇌하며 쓴 한 구절을 옮기며
오늘 공부 이야기 끝.
"지나가는 한 여성을 잡고..."
여자도 아니고...

돌아가는 아이들,
상범샘이 민근이를 태우고 석현으로 가고
나머지는 캘로퍼를 탔습니다.
짚차 짚차 타고 싶다 노래 여러번 불러서
좁으면 좁은대로 가자 하고 떠났는데
역시 인기좌석은 트렁크입니다.
그곳에서 내리는 아이를 보는 아비 마음을 짠하겠지만
비좁고 어둔, 불편한 공간이
태평양보다 너른 기쁨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아이들 세상이라니까요.
우리 어른들도 그런 어린 시절을 갖지 않았던가요,
상자에 든 근사한 장난감보다
그 상자로 더 재미나게 놀던 어린 날 말입니다.

쉽진 않으나
참 다행입니다.
세상에 온갖 일 다 놔두고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물꼬에 살고 있어서.
날마다 느꺼울 수 있답니다, 이 곳 대해리에선.

이시원

2003.10.29 00:00:00
*.155.246.137

저도 빨리 대해리에 노러가구싶어요..
노러갈생각만하면 끼악(?!) 근데 조만간 갈수 있을꺼가타요..
왜냐면 아토피떼문에 어떤수련을하러가거든요~~^^Happy

진아

2003.10.29 00:00:00
*.155.246.137

교장쌤 강아지 분양좀 해주세요... 이번주 금요일에 친구랑 시간내서 강아지 분양하러 갈게요... 그리고 저희 엄마가 주신 김치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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