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날적이 10월 29일

조회 수 860 추천 수 0 2003.10.29 22:56:00

2003년 10월 29일 물날 맑음

자유학교 물꼬 울타리 찻집의 은행나무 가운데 세 그루는
잎을 죄다 떨구어내었습니다.
그만 퀭해진 어미 잃은 소 눈처럼
휑하니 저 건너 산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성큼 한 계절을 운동장으로 들이며
우리 아이들 그 사이를 비집고 걸어 들어오네요.
민근, 영준, 준성, 왕진, 형주, 무연, 상연, 대원, 두용, 해림, 하다,

우리 아이들이 요가와 명상을 하고 있는 광경은
늘 혼자보기 아쉽습니다.
그 고요 속에 있으면
그만 우리 모두 사람되고 말지 싶습니다.
오늘은 삶 가꾸기.
이번 주부터는 삶 가꾸기를 다르게 진행합니다.
앞 시간에 제가, 다음은 희정샘과 상범샘이 두 패로 나누어 하던 것을
물날 하루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모두를 한데 모아놓고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두 분이 온전히 하루를 교무실에서 쓸 수도 있어야겠다 싶은 것도 까닭이나
역시 선생은 아이들 속에 있어야 사는 것 같은
제 욕심도 한 몫했네요.
영동대를 다녀오니 세 시가 넘으니
나갈 때 희정샘한테 재료를 부탁했더랬지요.

다져진 재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읊고
씻고 온 손 걷어부치고 만두를 빚습니다.
옛날 옛적 손이 큰 할머니가 마당만한 만두피에다 온갖 재료를 넣고
무지무지 큰 만두를 빚어 웬갓 동물 다 나눠먹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
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들 보내는 등 뒤에서 그 얘기가 생각났지 뭐예요.
낼 이야기 들려주기에서 해야겠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나 말고 다른 이에게 줄 만두를 딱 넷,
세 개도 아니고 네 개만 빚자고 시작했습니다.
모양도 욕심 내지말고 그냥 딱 접어
제발 입을 벌리지는 않게 꼭꼭 여미자 당부했습니다.
재료를 비비는 동안 침 튀겠다고 입을 틀어막고 있던 녀석들이 뎀벼듭니다.
한 사발씩 세 패를 나눠 퍼주니
제법 손을 정성스레 씁니다.
여문 손이 집을 짓고
여문 손이 세상을 잘 살지 않던가요.
아이들 손이 무섭습니다,
만두피를 세 묶음 사면서
글쎄 이걸 다 빚기나 할까 싶더니
웬걸요, 모자라데요.
만두를 구웠습니다.
"맛이 어떤지 말해 줘. 그래야 더 줄지 안줄지를 결정할 것 아냐."
"선생님, 진짜 맛있어요."
우리 상연이가 얼른 대답합니다.
"여태껏 먹은 만두들과 견주어줘야지."
"여태껏 먹은 만두들보다 훨씬, 최고로 맛있어요."
얼른 상연이 만두 하나 더 주자 너도나도 나섭니다.
"그럼요, 그럼요, 최고예요."
한 판, 두 판, 세 판, 그리고 마지막 한 판을 굽고
어, 속이 아직 남았잖아요.
왕창 볶았지요.
아이들은 입도 무섭습니다.
눈 깜짝입니다.
그래도 숟가락 놓기 못내 아쉬운...

아이들과 하는 일은
정작 공부하는 시간보다 그 사이와 사이
빛나는 순간들이 더 많다 싶을 때가 정말 많지요.
어제는 하다랑 읍내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저들끼리 당산나무에 얽힌 얘기를 들려줍디다, 제게.
차가 민근이를 태우고 석현을 가는 사이
아이들이 우르르 헐목까지 뜀박질을 하는데
가는 길에 있는 당산나무 터가 저들 역시 쉼터랍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오줌도 누고 기름을 넣고 다시 간답니다.
뭐든 놀이고 뭐든 공부고 뭐든 삶인 아이들입니다.
정말 학교가, 공부가 어떠해야할지를
날마다 이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익힙니다.
음력으로 2004년 삼월 삼짇날 진달래화전을 부쳐내며
학교 문을 열 날에 마냥 가슴 부푸네요.
지금도 이미 충분하다 싶지만.

참, 아이들 바래다주고 온 상범샘 손에
진아 왕진이네서 온 막 담은 김치가 담겼습니다.
마침 김치 바닥인 참인데
맛나기도 맛나게 먹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잘 자...


진아

2003.10.30 00:00:00
*.155.246.137

맛있어요...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 몰래 준거니까 맛있게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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