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4.나무날. 비

조회 수 476 추천 수 0 2021.03.26 00:52:01


 

비 내린다.

봄이 머잖은 곳에서 건들거리고

순들이 저마다 옴지락거리는데,

종일 글은 되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만 남았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달포 만에 책 한 권의 원고를 보내겠다 했단 말인가.

믿는 3월이었는데, 3월이 배신 중이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 안팎을 살핀다.

 

외할머니는 딸이 다섯이었다.

막내딸은 나와 나이차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내 막내이모다.

이모가 뭔가로 퉁퉁거리면 할머니 그러셨다.

네가 밥을 먹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러는구나.

오늘은 문득 그랬다, 내가 밥을 먹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괴로운 갑다.

물꼬에서 사는 시간에는 넘치는 일로 그런 게 없는 걸,

출간계약서에 찍은 도장은 분명 일인데 하는일이 아닌 것만 같다.

 

나이 스물에 읽던 장 그르니에의 <>을 나는 지금도 읽는다.

아직 스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나 보다.

지금의 내게는 구박을 못하고 스물의 나를 업시름한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이 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54 2024. 4.22.달날. 갬 옥영경 2024-05-28 23
6653 4월 빈들 닫는 날, 2024. 4.28.해날. 해 맑은, 그리고 흐린 밤 옥영경 2024-05-28 23
6652 4월 빈들 이튿날, 2024. 4.27.흙날. 맑음 옥영경 2024-05-28 25
6651 2024. 4.21.해날. 삽살비 옥영경 2024-05-28 26
6650 2024. 4.23.불날. 저녁비를 향해 가는 하늘 옥영경 2024-05-28 26
6649 2024. 4.25.나무날. 맑은 옥영경 2024-05-28 26
6648 4월 빈들 여는 날, 2024. 4.26.쇠날. 날 좋은 옥영경 2024-05-28 26
6647 2024. 4.24.물날. 비 옥영경 2024-05-28 31
6646 2024. 4.15.달날. 비 옥영경 2024-05-24 39
6645 4월 빈들(4.26~28) 갈무리글 옥영경 2024-05-28 39
6644 2024. 4.30.불날. 비 옥영경 2024-05-28 39
6643 2024. 4.16.불날. 갬 / 다큐 <바람의 세월> 옥영경 2024-05-24 40
6642 2024. 4.29.달날. 비 옥영경 2024-05-28 42
6641 2024. 4.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5-24 44
6640 2024. 4.17.물날. 맑음 옥영경 2024-05-24 45
6639 2024. 4.20.흙날. 비 옥영경 2024-05-24 51
6638 2024. 5. 1.물날. 비 든 밤 옥영경 2024-05-28 52
6637 2024. 4.19.쇠날. 살짝 습기가 느껴지는 맑은 날 옥영경 2024-05-24 72
6636 2022.12.22.나무날. 눈 옥영경 2023-01-06 284
6635 2022.12.11.해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28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