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날리는 대해리의 새벽이었다.

영하 6도의 밤.

 

엊그제 달날, 달골 오르는 길 막바지 포장농로에 면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달날 오후 포장을 깬 뒤 실어내고 쇠날에나 콘크리트가 들어온다 했다.

믹스트럭이 서둘러 섭외가 된 모양, 오늘 들어온다는 전갈.

보름 동안 다닐 수 없겠다던 일정인데,

이리 되면 더 빨리 차를 움직일 수 있을 테지.

준한샘이 나서서 시공사와 포장 부분에 대한 협의를 끝내다,

조금 더 길을 넓게 쓸 수 있도록.

공사는 비닐과 보온재로 잘 덮어두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 한다.

내일 밤 눈 소식이 있던데...

 

이즈음의 물꼬 방문은 쉽지 않다.

겨울이 모질어 생각해낸 게 겨울90일수행동안거.

겨울 한철 기본 일정, 미리 잡힌 일정을 빼고 대부분의 방문을 215일 이후로 잡는.

하지만 바쁜 마음들이, 급한 사정들이 생긴다.

주말 12일 상담이 잡혀있었다.

눈도 내린다는데 먼 길 올 생각 말고 각자 자리를 잡고 전화기를 붙잡기로 했다.

8시 시작한 통화가 10시에 끝났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20년도 넘어 된, 서른 살도 훌쩍 넘긴 인연이다.

물꼬가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던 시절이었고, 세가 조금씩 작아지는 세월을 함께했다.

 

부모의 결혼 생활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슬아슬하게 이성과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익히 그의 연애사를 들어왔더랬다.

얼마 전 급기야 술을 마시고 어머니랑 격하게 다투었다고 했다.

당신이 자신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에 대해서.

아이에게는 엄마가 절대적이었을 테니까.

겉으로 담담했고, 그래서 어른들은 그 아이를 두고 떠났다.

아니 부모의 갈등을 피해 아이를 멀리 떠나보냈다.

아이는 자라 밥벌이도 하고 제 몫의 삶을 잘 살아내는 듯 보였지만,

그런 세월 따위 개의치 않은 듯 보였지만,

그 아래 심연에서 떨고 있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물 안은 어둡고 춥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의 마음을 위해 내 깊은 상처를 들려주었다.

어떻게 치유가 일어났는지를.

나를 위해서 나를 용서하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가한 어른을 용서하기 위해서 숲길을 걷듯 나아가고 있었다.

감정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그때 우리 감정의 아래에 있던 우리가 바라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숲이 깊어갈 때 우리는 그 감정을 바로 볼 수 있었다.

, 그대가 원하는 게 그거였구나.

그렇다면 그게 정말 없었던 걸까?

부모로부터 없었지만

다른 관계 혹은 다른 것(책이건 뭐건)으로 채워졌던 경험을 찾아내면서

그가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다.

그 세월에 물꼬가 그의 곁에 있었음도 그가 생각해냈다.

어제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이해하고,

그가 바라던 것들이 다른 것에서 안전하게 채워지던 경험을 짚어가면서

지금에 비로소 그가 서 있었다.

이제 무엇을 어찌 할까?

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눈을 보고 나누기로.


우리들의 심중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게 첫째 성과.

우리 안에 또 다른 아이가 있음을 알고 그를 이해한 것,

우리에게 상처 입힌 이야 나쁜 사람이지만

그것을 어찌 느끼는가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것임을 안 것,

...

화를 내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화가 안 나도록 이해하는 과정 같은 그런 거.

고맙다. 그가 마음을 살펴가는 동안 나도 내 마음이 헤아려졌다.

사람의 마음 바닥은 깊디 깊다.

풍랑이 그걸 뒤집어 끌어올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삶이 깨지진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는 강하다. 아이 때도 그랬고, 어른이므로 더욱 그럴 수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836 2021.12.18.흙날. 눈 옥영경 2022-01-08 340
5835 2021.12.17.쇠날. 한파주의보 옥영경 2022-01-08 324
5834 2021.12.16.나무날. 짧은 해 옥영경 2022-01-08 322
5833 2021.12.15.물날. 흐림 옥영경 2022-01-08 344
5832 2021.12.14.불날. 흐림 옥영경 2022-01-08 411
5831 2021.12.13.달날. 맑음 / 잠복소(潛伏所) 옥영경 2022-01-06 379
5830 2021.12.12. 해날. 맑음 / 아이들은 늘 있다! 옥영경 2022-01-06 326
5829 2021.12.11.흙날. 맑음 옥영경 2022-01-06 403
5828 2021.12.10.쇠날. 오전에 비, 오후 긋다 옥영경 2022-01-06 356
5827 2021.12. 9.나무날. 흐리다 맑음 / 유한계급론, 그리고 보이스피싱 옥영경 2022-01-06 367
5826 2021.12. 8.물날. 맑음 / 겨울 계자 신청 문열다 옥영경 2021-12-31 435
5825 2021.12. 7.불날. 맑음 옥영경 2021-12-31 373
5824 2021.12. 6.달날. 맑음 옥영경 2021-12-31 404
5823 2021.12. 5.해날. 맑음 옥영경 2021-12-31 359
5822 2021.12. 4.흙날. 진눈깨비 살짝 옥영경 2021-12-31 330
5821 2021.12. 3.쇠날. 맑음 / 금오산 옥영경 2021-12-31 394
5820 2021.12. 2.나무날. 맑음 / 우리 모두 늙는다 옥영경 2021-12-31 370
» 2021.12. 1.물날. 갬 / 우리들의 깊은 심중 옥영경 2021-12-31 336
5818 2021.11.30.불날. 비 내리다 오후 긋다 / 김장 이튿날 옥영경 2021-12-30 390
5817 2021.11.29.달날. 맑음 / 김장 첫날 옥영경 2021-12-30 34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