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3.쇠날. 맑음 / 금오산

조회 수 394 추천 수 0 2021.12.31 02:47:47


대해리는 비와 진눈깨비 다녀간 아침,

고속도로는 말꿈했다.

 

어디 가나 청소다.

예를 들면 서랍장에 마구 구겨져 들어가 있는 비닐들 정리.

눈에 잘 안보여서 먼지가 수북한 선반 뒤편 그런 거.

잠깐 어른 모시고 시내로 가 필요한 것들을 사들여 놓기도.

예컨대 구멍 성긴 욕실 신발 대신

물이 튀더라도 양말 신고 편히 들어갈 수 있는 앞이 막힌 털신 슬리퍼 같은.

커피믹스가 1회분으로 포장된 커다란 상자 그런 거.

구석구석 살펴드리고 남도의 어르신 댁을 떠났다.

차에는 김장김치며 갓김치, 파김치, 무김치, 지고추무침,

말린 나물들, 쑨 도토리묵, 그리고 멸치액젓을 달여 만든 멸장과

항아리의 묵은(굳은) 된장에 섞을 띄운 콩장까지.

 

칠곡께를 지나치는 걸음이었다.

몸빼라고 흔히 부르는 일바지를 입은 채였고,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전통옷이었다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대 자원과 경비를 절약하려

남성복으로 국방색의 '국민복', 여성복으로 '부인표준복'을 제정했는데,

부인표준복 가운데 하나가 몸빼였단다.

특히 일제는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자국민들 상대로도

사회통제와 군수품 조달의 목적으로 몸빼 착용을 강요했고,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나 전차들을 타거나 관공서, 극장에 가는 것을 금지하기도.)

 

덕유산과 민주지산이야 물론이고 적상산 갈기산 진악산 가지산 가야산 ...

두루 인근 산들을 오르내리는 동안 구미 김천 칠곡에 걸친 금오산은 마음을 둔 적이 없었네.

삼국시대 한 승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했다던가.

공영주차장에서 현월봉 정상까지 원점회귀 길이 산불예방기간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코스.

케이블카가 있지만 20분이면 오를 구간.

정상까지 생각한 길이 아니었다.

해원사던가, 절집 하나 있어 들여다보고,

목적지로 정한 대혜폭포로 갔다. 해발 400m 지점, 높이 27m.

옛적 이 고장의 유일한 수원지였다지.

폭포라고 이름 붙인 곳들 그리 감탄이 나오지 않던데,

호주 시드니 외곽 블루마운틴의 비단결 같은 폭포가 떠오르더라, 벌써 20년이 된 풍경인데.

본다는 것은 그리 강렬한.

이 겨울 가뭄에도 수량이 많았다.

폭포를 둘러친 바위를 기어올라 도선굴도(북쪽 계곡의 중턱이 되는) 들여다보다.

언제 침낭을 들고 와서 자도 되겠는.

벌써 어둑해지는 산이 등을 밀어대고 있었다.

막걸리는 구경만 하고 대나무 채반에 나온 파전을 하산주로 대신한 저녁.

산오름도 드물었던 한해의 허전함을, 코로나19로 묶인 발도 아니었는데,

또 이렇게 지나는 걸음으로 채웠더라.

 

학교에 짐을 부리고, 계곡에 차를 세우고 달골로 걸어 올라오다. 저녁 9시.

달골 막바지 길,

1130일 걷어내고 121일 콘크리트를 친 도로 보수공사 구간의 덮어놓은 비닐과 부직포가

바람에 헤집어져 있었다.

'덮기는 했으나 동파가 걱정'이라며 사진 한 장 찍어 시공사에 문자 넣다.


보일러를 외출로 해두었던 9도의 집을 18도까지 끌어올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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