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반은 했다, 물꼬의 많은 일정이 그러하듯.

맑았고, 바람이 좋았다.

공룡능선을 걸었다.

 

가다가 돌아올 수 있다고 일러놓고 가는 길이었다.

가다 접는 일이 드물게 살았다. 특히 그것이 산오름이라면 더욱.

2, 3월 앓은 뒤 몸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해서 소문내지 않고

지난해 10월 초 공룡능선행을 위해 모였던 셋만 조용히 다시 모이기로.

누구든 가다가 멈췄을 때 끝까지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놓고

가는 이는 가는 대로 되돌아가는 이는 또 그것대로 편하게 움직이기로 한 여정이었네.

 

05시 설악소공원에 차를 두고 가벼운 아침을 먹고 산에 들다.

김치볶음밥과 삶은 달걀을 도시락으로, 그리고 오이와 이동식을 챙겼다.

당연히 넉넉한 물도!

계획대로라면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공룡능선을 타고 무너미삼거리,

그리고 희운각대피소로 올랐다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서기로.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서는 길이 깎아지른 길이니 아무래도 그게 더 수월할 거란 판단.

그러나 우리는 길을 달리 가게 되었으니!

비선대에서 천불동계곡 양폭대피소, 그리고 무너미 삼거리에서 희운각 올라갔다

무너미 삼거리에서 마등령, 그리고 원점회귀.

이유? 뭐 일이 그리 되었다.

 

비선대 앞 데크에서 몸풀기.

천불동계곡 귀면암이 먼저 반겼고, 얼마쯤 오르자 양폭대피소.

양폭대피소는, 내가 아는 그곳이 아니었다.

2012년 불이 났고, 2014년 새로 지은 곳.

수용인원이라고 10. 설악산국립공원의 대피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은.

천불동계곡 중간쯤이니 숙소 역할은 줄어든.

양폭대피소 정면인 만경대 암릉은 여전히 화채릉에서 천불동계곡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천불동계곡 본류 100미터쯤 위에 있는 왼쪽의 음폭이 염주폭(염주골)과 합류한다.

그래서 양폭이다.

양폭 오른쪽으로 천당폭까지 이어지는 철계단을 올라가면

희운각대피소 중청 대청으로 등산로가 이어지는 것.

 

산을 내려오는 또는 오르는 이들을 만나면 물었다.

소공원에서 출발 대청봉까지 갔다가 오겠다는 이들이 있었고,

한계령에서 출발해 대청봉 찍고 내려오는 이들이 있었고,

소공원출발 마등령, 무너미, 천불동으로,

오색에서 출발해서 천불동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미시령 옛길에서 공룡능선을 지나 대청에서 한계령으로 갈 백두대간을 타는 이가 있었고

(대간에서 빠진 2구간 5구간을 채우는 중이라는),

중청에서 자고 오거나 자려고 가는 이들이 있었다.

, 그런데 소청에서 자고 온다는 저이는 누구인가?

중청을 잘못 말한 거겠지.

알고 보니 공원 직원이었네, 하하.

 

쪽동백꽃이 길을 밝혔다. 꽃길을 밟고 가는 설악산행이라.

머리 위로 이어지는 하얀 함박나무꽃.

발아래는 풀솜대(지장나물) 두루미꽃 애기나리 붉은터리풀 큰꼭두서니 구슬붕이

노루귀 하늘말나리 큰앵초 난장이붓꽃 팥배나무꽃들이 이어졌다.

 

무너미삼거리에서 바로 공룡능선길에 들어서지 않고

200미터 벗어난 희운각대피소로.

대피소는 다시 짓는 중.

물이 좋았다. 계곡에서 끌어온 물이 펑펑 시원하게 쏟고 있었다.

그늘에 마련된 야외테이블에 자리잡았다.

놀았다. 라면도 끓여먹고, 차도 달이고. 1시간 30여 분 잘 쉬었다.

다시 가볼까?

이 속도대로라면, 별일만 없다면

우리는 저녁 730분께면 소공원에 무사히 도착할 것인데...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을 막 들어서면서 암벽을 만난다.

그곳에서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 이도 있었네.

그렇게 기를 팍 죽이는, 어쩌면 이 길이 여간 어렵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주는 곳.

벌써 겁을 먹어버린 일행이 있었으나 그 고비는 잠깐,

긴 공룡능선 가운데 정말이지 새 발의 피이려니.

공룡능선을 타고 1km쯤 걸었을 때

대청 중청 소청 서북능선을 멀리 두고 그 앞으로 용아장성을 내려다보며 사진도 찍고.

길이야 가파르지만 마등령까지야 순조로왔다.

1,275봉도 거뜬히 끼고 돌고.

마주 오는 이들이 물을 자주 물었다. 희운각에 물 많다 알려주고.

공룡능선은 물이 귀하다. 하여 꼭 물을 넉넉히 챙기기.

바위투성이를 기어야 하니 장갑도 필수!

늦어질 시간을 위해 헤드랜턴도 꼭!

15:30부터는 마주 오는 이들이 없었다.

참으로 호젓한 길.

우리가 설악산을 다 차지하고 걷고 있었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그런 기회라도 있으니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런가.

 

, 문제는 마등령부터였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짐작했던 일이다.

빠르면 12시간(쉬는 것 포함), 그런데 희운각에서 많이 놀았으니

저녁 7시께 비선대만 도착하면 나머지 남은 3km야 길이 좋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계산.

아아, 초보자가 있었으니, 정말 그런 왕 생 초짜일 줄이야! 겸손의 말인 줄 알았더라니.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나섰으니 초보라 해도 웬만큼이야 산을 오른 줄 알았던.

아아아, 정말...

다행히 이 있는 그이였다!

마등령-비선대 간 절반은 어둑해서는 벗어나기가 쉬운 거라.

앞에서 길을 잡고,

뒤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안내하고,

초보자는 네발로 거꾸로 길어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너럭바위를 만나면 모두 앉아 불을 껐다.

산 정령을 만나는 시간.

정령들이 존재를 지켜주는 산이라.

그런데도 일어나는 사고?

그건 한계를 넘은 거라, 도를 지나쳐서 그런 거라. 사람의 오만이 있어서 그런.

처음엔 무섭다던 이도 시간이 지나며 밤 하늘 별을 세고,

밤이면 찾아드는 숲 바람을 타고 있었네.

그예 비선대에 이르렀네.

이제 얼마쯤의 계단만 내려가면 편안한 길이라.

와선대부터는 초보자가 양쪽 두 사람을 어깨동무하고 걸었다.

그야말로 사람 하나 구해 내려오는 산길이었다.

산문을 나서기 직전

자판기 하나쯤 있었으면, 단 음료 하나 마셨으면 싶은데

바로 앞에 딱 거기 녹색 불을 밝히며 나타난 자판기에 음료 몇 개씩 마신 뒤였네.

주차해 놓은 설악소공원 들머리에 닿으니 자정.

고마워라! 산이 허락해준 길이었다.

고마워라! 동료들은 동지가 되어 있었다. 진한 동지애.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뜨거운 마음과 서로 역시 안아낸 너른 마음이 준 감동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내 안내자가 되어준 공룡능선이었더라.

 

그 시간에도 불을 밝힌 편의점 있어 하산주도 사고

01시에 밥까지 해서 먹고 김치부침개와 골뱅이소면까지.

03시에야 방의 불을 껐다.

우리는 아침에 무사히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소공원-비선대, 왕복 6km

비선대-양폭대피소-무너미고개, 5.5km

무너미고개-희운각, 왕복 0.4km

무너미고개-마등령; 바로 그 유명한 공룡능선, 5.1km(지도에 따라 4.5km, 4.7km, 5.1km로 표기)

마등령-비선대, 3.5km

20.5km / 05~24, 19시간을 산에 있었다!(산을 자주 찾는 이라면 12시간만 잡아도 될 거라.)

 

대해리 학교에서는, 쪽파밭을 돌보았다는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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