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입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저는 부산 해운대에서 근무하는 중 입니다.
저희 부대는 바닷가 근처에 작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바다는 보이지 않구요.
고라니, 멧돼지가 뛰어다니고 종종 반딧불도 볼 수 있는 그런 곳 입니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고 생각보다 즐겁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것, 갇혀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명령과 복종'이라는 구조 속에 있다는게 힘들지만
그래도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몸을 쓰며 작업하고, 훈련 받고 일과 끝나면 책도 읽고...
뭐랄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계곡물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이제야 호수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여유가 있네요.
이래저래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작은 일에 감정이 좌지우지 되고,
억울한 일에 울컥하게 될 때마다
아직 여기까지구나. 내 마음이 아직 이만큼 이구나.
참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구나.
내 삶에는 아직 고난이 더 필요하구나.
하고 제 한계도 느끼고 있습니다.
갈 길이 멀다는게 한편으론 슬프고 한편으론 기쁘고...그렇습니다.
부대에서 가끔 나무를 태울 때가 있습니다.
장작타는 냄새가 날 때만다 그렇게 물꼬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립더라구요.
분명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시겠죠.
전역하면 손 보태러 가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지금 여기는 비가 많이 내려요. 금낭화랑 자주달개비랑 매발톱, 산괴불주머니들이 흠뻑 젖었네요.
남들은 군대생활 힘들다는데 생각보다 즐겁다고 하니 좋네요.
행운님이 여기 와 계신건 알죠?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엄마도 행운님 걱정이 많으세요.
무열샘, 건강하세요.
그리고 빨리 제대하고 물꼬 오세요~~
보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