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륵


                                         정 일 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현대시학 2001년 12월호



정일근 시인

58년 경남 진해출생.

19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 등 7편의 시를 발표,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로 등단.

'바다가 보이는 교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등 12권의 시집.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포항국제동해문학상 등 수상.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 언론출판원장 등을 지냄.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후원] 논두렁에 콩 심는 사람들 [13] 관리자 2009-06-27 31602
공지 긴 글 · 1 - 책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한울림, 2019) file 물꼬 2019-10-01 15083
공지 [긴 글]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도서출판 공명, 2020) file 물꼬 2020-06-01 13159
공지 [펌] 산 속 교사, 히말라야 산군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다 image 물꼬 2020-06-08 12645
공지 [8.12] 신간 <다시 학교를 읽다>(한울림, 2021) 물꼬 2021-07-31 12483
공지 2020학년도부터 활동한 사진은... 물꼬 2022-04-13 12185
공지 물꼬 머물기(물꼬 stay)’와 ‘집중수행’을 가릅니다 물꼬 2022-04-14 12291
공지 2022 세종도서(옛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다시 학교를 읽다>(옥영경 / 한울림, 2021) 물꼬 2022-09-30 11148
공지 [12.27] 신간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한울림, 2022) 물꼬 2022-12-30 9378
공지 2024학년도 한해살이;학사일정 (2024.3 ~ 2025.2) 물꼬 2024-02-12 1599
962 [5.18~19] 5월 집중수행 물꼬 2024-04-30 66
961 [5.24~26] 5월 빈들모임 물꼬 2024-04-30 95
960 [5.27~6.9] 교무·행정실이 빕니다 물꼬 2024-04-30 108
959 4월 빈들 마감 물꼬 2024-04-13 310
958 [4.20~21] 4월 집중수행 물꼬 2024-03-27 336
957 [마감] 3월 빈들 신청 끝 물꼬 2024-03-15 414
956 173계자 통신·4 – 계자 사후 통화(1월 15일 10~22시) 물꼬 2024-01-13 438
955 173계자 통신·3 - 나흗날입니다 물꼬 2024-01-10 441
954 [4.26~28] 4월 빈들모임 물꼬 2024-03-27 483
953 173계자 통신·5 - 계자 사진 물꼬 2024-01-16 488
952 [고침] 173계자 통신·2 - 학부모방 물꼬 2024-01-01 506
951 [2.3~6] 실타래학교(3박4일) 물꼬 2024-01-28 555
950 계자 일정 관련 질문에 답합니다 물꼬 2023-12-08 582
949 [3.29~31] 3월 빈들모임(반짝 빈들모임) 물꼬 2024-03-14 586
948 173계자 통신·1 - 주차장과 화장실 물꼬 2023-12-05 589
947 [3.5] 2024학년도 여는 날 ‘첫걸음 예(禮)’ 물꼬 2024-02-12 614
946 [2.12~3.3] 인도행 물꼬 2024-01-13 675
945 [1.19~20] '발해 1300호' 26주기 추모제 [1] 물꼬 2024-01-13 764
944 [10.21~22] 10월 집중수행 물꼬 2023-09-30 827
943 [10.26] 울진, 작가초청강연 물꼬 2022-10-31 84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