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수민 샘은 초등학교때부터 물꼬에서 연극터 공부, 계절학교를 같이 했으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새끼일꾼으로 물꼬에 오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물꼬 논두렁이십니다.

97년이었을까, 98년이었을까. 이제 그럼 9년, 10년째가 됐네, 내가 지금 이제 19이니까. 정말 오래 된 거 같아. 인생의 반이잖아, 히히.
그 오랜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 곳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면, 그 곳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면 그 것도 거짓말일거야. 10살배기 아이가 이젠 20이 다 됐으니까 말이야. 믿기지가 않아, 난 아직도 내가 20살이 되는 그 날이 올 거 같질 않아. 그 때의 나도 그랬었지. 2004년은 안 올 줄 알았어. 그건 오지 않는 거라고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마음이 어렴풋이 있었던 거 같아. 그런데 지금은 2006년이고 난 19, 열아홉이야.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쉬웠어, 아이들과 제대로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너무 빨리 돌아와 버려서. 그렇잖아, 거기 가 있으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잖아. 뭐, 생각해보면 늘 이만큼씩의 아쉬움이었던 거 같기는 해. 사실 며칠이었는지는 상관없는 것도 같아, 숫자 따위. 내 마음의 문제겠지. 14박 15일을 갔어도 아쉬웠겠지. 사람은 항상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미련과 후회를 남기고 돌아오니까.
글집 앞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 좋았는데. 좀 아쉬웠던 거라면, 그리기 전에 하다가 그린 걸 봐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비슷해져 버린 주제들이 아쉽다면 아쉬워. 하다가 그린 걸 보지 않았다면 좀 더 다양하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뭐, 사실 나도 할 말은 없어. 뭔가 의미를 두고 그렸다기보다는 그냥 나무가 갑자기 그리고 싶어서 나무를 하나 그렸거든. 음, 그리고 대신 옆에다가 뭐라고 끄적거려 놓긴 했어. 지금 집이 아니라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아마 그런 말이었을 거야.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 그리고 새로운 나."
뭐, 사실 이것저것 변한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 곳은 나에게는 언제나 익숙한 곳이야.
그래서 그 곳에서는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이 곳에서보다는 좀 더 편한가봐. 이상하지, 사실 익숙하다면 이 곳이 더 익숙해야 하는 건데. 응, 아이들과 함께여서, 그리고 그 곳으로 달려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만. 뭐, 그래도 장소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열심히 나른 돌로 쌓인 돌탑도, (지금은 책방이지만) 밤늦게까지 떠들고 놀던 곳간도, 여자방도, 남자방도, 운동장도, 훨씬 근사해진 강당도 모두 내 마음 안에 아주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야. 밤 산책을 가곤 했던 커다란 나무가 보이면 난 온 마을이 예전의 그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다는 주객전도적인 착각이 들곤 해. 정말, 요즘은 왜 밤 산책을 안 하지? 참 좋았는데 말이야. 아, 내가 새로운 이유? 그 곳에 가면 난 내가 항상 새롭거든. 모든 게 익숙하고 따스한 그 속에서 혼자 변해버린 난 어째 처음 보는 내가 되어 버려.
선생으로서의 마음가짐. 어쩌면 출발하기 전에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지고 가야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그 곳에 간 적이 없었어. 예전과 아주 똑같다는 말은 못 하겠지만, 그냥 마냥 좋은 거지, 뭐. 수진이랑은 그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해. "야, 뭐 물꼬 가는 건데. 짐? 30분이면 챙기잖아?" 어릴 때처럼 두근거리며 잠들지도 않지만 학교가 보이면 여전히 두근두근 해, 영동역에서 내릴 때도. 그런 생각이 들어. 어쩌면 내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 곳으로 향하는 게, 적어도 나에게는 최고의 마음가짐일 수 있다는 거.
내가 그런 얘기 한 적 있었나? 난 그 곳에서 살라고 하면 못 살 거라고. 하지만 그 곳에서의 시간이 나의 많은 부분을 키운 것 같아. 많은 것을 배운 곳이니까. 요즘은 뭘 배우냐고?
그래, 이제 와서 뜨개질, 바느질 이런 걸 배우지는 않지, 물론. 요즘은 그런 걸 배웠어, 내 안으로 들어가기. 이번에 열린 교실에서 난 또 한 땀 두 땀을 했어. 여태까지 그런 적이 없는데 수진이 한 명이 들어 온 거야. 게다가 수진이는 혼자서 알아서 정말 잘하더라고. 그래서 오랜만에 나도 여유롭게 내 걸 만들 수 있었지. 주머니 하나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걸 만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이런 저런 생각들. 무슨 생각이냐고? 그건 비밀, 히히.
그래서 난 나를 위해서 그 곳에 가. 샘들을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학원 언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어. "나를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나를 구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기운에 영향을 받을 거라고. 그래서 난 그 곳에 가서 나를 위해서 생활을 해. 내가 많은 것을 얻어갈 수록 아이들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많은 걸 얻어갈 수 있는 걸 테니까.
어릴 때야 마냥 커서 그 곳에서 학교 다닐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지만 (뭐, 사실 그 것도 5, 6학년 전에나 그랬지만) 지금은 그 곳에서 나아가려는 방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아. 이건 아닌데, 하는 부분들도 있고. 하지만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샘들은 샘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지금처럼 나를 위해서 한 번씩 그 곳에 가서 새로운 나를 찾고, 새로운 나를 보고 오는 것. 그러면 되는 게 아닐까? 옛날처럼 그 곳에 목을 매지는 않아, 이젠. 어느 게 더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난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좋아.
난 요즘도 다미가 무진장 보고 싶다. 그 거 알지? 그 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눈은 그 곳 하늘의 별보다도 더 반짝거려서 아이들을 기억하려고 하면 그 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머리 속을 가득 덮어버리는 거. 뭐,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 아주 작은 소망이지만 난 내 눈동자가 아직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음, 너무 큰 소망인가?
꼭 행복해야해, 꼭. 그리고
좋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