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수진은 앞서 실은 염수민의 동생입니다. 자매가 나란히 새끼일꾼으로 물꼬에 오고 있지요. 물론 물꼬 경력도 같지요

항상 물꼬에 죄송스럽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초등학생시절 까지만 해도 방학마다 새끼일꾼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사실 새끼일꾼으로 내려갔던 건 몇 번 없는 것 같기 때문이죠.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사실 굉장히 죄송스럽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사실 물꼬와 저는 오랜 시간을, 그것도 자주 떨어져 있습니다. 나름대로 바쁜 고등학생의 일상을 보내고 있고, 생각 날 때는 방학 직전에 방학 계획을 짤 때, '아, 이번엔 언제 계자를 가야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 할 때이죠. 그래도 신기한 것이, 잊지는 않아요. 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아무리 바쁘고 그래도 방학이 되면 '가야지' 라는 생각은 한다는 거죠. 습관화인지, 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겨울방학도 그랬습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1월을 맞기 직전에 언니와 함께 물꼬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도 조금은 놀랐구요. 그런데, 일정을 확인해 보니 맞는 날이 23,24,25일 밖에 없었습니다. 중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어서 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안 가는 것 보단 낫겠다 싶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뭐 이제 영동 가는 게 사실 큰일도 아니었구요.
역시나 이번에도 잘 다녀왔습니다. 요약하면 그렇다는 거죠.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변해버린 제 모습과 이런저런 상황들에 저 혼자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항상 부족할까요, 저는. 완벽히 아이들과 섞이지도 못하고, 샘들 잘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산은 어찌도 그렇게 못 타는지. 부지런한 것도 아니고 꼼꼼하지도 않고. 어떤 샘께서는 반성문 쓰는 것 같다 하셨지만, 샘들 갈무리를 하거나 평가글을 쓸 때 마다 저는 참회록을 쓰는 듯 한 기분입니다. 얼마나 잘 하지 못했기에 항상 후회뿐인지요. 꼭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그렇게도 남습니다.
달라진 제 모습에 많이 실망을 했습니다. 물론 저번 계자보다 나아진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나이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제 생각이나 판단, 행동이 어른들의 그것과 비슷해져 간다는 것을 직접 느끼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더 유연해지지 못하고, 더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더군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물꼬를 찾아서, 품앗이 샘들과 만나는 일이 또 새롭더군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샘들로부터도 정말 많이 배웁니다. 여전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새 8년의 인연인 소희샘과 안 본 사이에 너무 예쁘게 커버려서 1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미리샘, 정말 오랜만에 만난 근영샘, 하나도 안 변하신 것 같은 세이샘, 모둠 샘이셨는데 하나도 못 도와드려서 진짜 죄송스러운 선진샘. 처음 뵈었는데 무언가 대단하신 것 같은 지영샘, 정말 고생 많으셨던 태석샘, 같이 겨울 산을 헤메이시던(...) 창원샘, 상열샘이라 해야 하는지, 정말 멋지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렇게 있어 주시는 두레일꾼 샘들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 이렇게 많은 가르침들을 줍니다. 물꼬에서 얻은 많은 것들 중에 사람들과의 인연은 정말 귀한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정말 절실하게 깨달은 건, '중간에 들어가지 말자.'입니다. 중간에 들어가니 아이들의 느낌이나, 일정의 흐름 같은 것들을 따라가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선생님들이 중간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건, 전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정신없을 것 같기도 하고, 샘들 기억하기도 힘들 것 같구요. 다음에는 모든 일정을 소화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일단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미리샘과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꼬 안에서 오랫동안 우리의 하늘을 같이 보고, 그 하늘을 오랫동안 같이 이고 온 친구의 느낌으로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직도 1년 차이밖에 안 난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습니다만, 미리샘은 너무 아름답게 자라주셨더군요, 하하하. (제가 그렇게 어른도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동의하시리라고 봅니다.) 우리의 변화한 모습과, 샘들의 변화한 모습, 물꼬의 변화한 모습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같은 시각으로 바라봐서인지 서로 같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물꼬가 가지기 시작하려는 폐쇄성과, 아이들의 수동적인 태도들과, 갈수록 많이 관여하려고 하는 샘들의 태도, 그리고 그 속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었던 저희의 자기반성도 있었더랬지요. 어쩌면 물꼬와 우리는 우리의 사고가 옳다는 이유로 다른 사고를 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골이 깊어지는 게 아닌가, 소통이 단절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놀라시겠지만, 그런 생각을 해 왔었거든요. 미리샘도 저와 같은 의견이더군요. 어쩌면, 이제는 철저히 관찰자, 이방인이 되어버린 저희들의 눈으로 바라봐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본질에 대해서 약간의 사고는 할 수 있는 자격정도는 저희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3자가 본질에 관해 논하는 건 오만밖에 되지 않음
을 알지만 말이죠.
한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제 생각도 어느 정도의 논리는 가졌습니다만, 그 만큼 저를 차지하고 있던 감정은 변화를 부정하려는 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제가 있을 때와는 많이 다른 물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직도 맘이 편하지 않은 것 일수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흑백논리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새끼일꾼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시는 건 어쩌면 속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거짓말은, 잘 못하거든요.
항상 많은 생각들입니다. 그런 많은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잠깐이나마 덜어내기 위함이 사실 아직도 물꼬에 저를 가게 하는 몇 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많이 덜어내고, 다시 많이 채워서 돌아왔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저를 조금이나마 키워냈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꿈을 향해 간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멋진 만큼, 아니 그 것의 몇 배의 노력과 눈물이 필요하다는 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냉혹한, 어쩌면 찬란한 진실입니다. 그래서 두레 일꾼 샘들은 정말 저에게 항상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샘들의 그런 모습이 제 자신도 제 자신의 꿈에 집중하게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항상 그렇듯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