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세이 샘은 대학 1학년, 풋풋한 모습으로 물꼬에 품앗이일꾼으로 첫발을 디뎠지요. 아직도 그 때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침 22살 때 '스물 두 살'이란 제목으로 전태일에 관한 연극공연을 함께 준비하며 가슴 뜨겁기도 했더랬지요. 지금은 학교 특수교사로 있으며, 물꼬 논두렁도 하고 품앗이일꾼으로 꾸준히 오신답니다.


0.
2년 만에 물꼬 계자를 찾게 되었다. 항상 눈앞의 일들이 빠듯하여, '꼭 다음 계자에는 가야
지' 하면서 2년이나 보내버린 것이다. 하루 전날 미리모임부터 같이 했어야 하는데, 신규교
사 연수가 금요일 저녁때 끝나는 바람에 오히려 계자 일정 하루를 까먹고 말았다. 확실히
처음부터 함께하는 것과 중간에 합류하는 것과는 아이들과 관계 맺는 질이 다를 수 밖에 없
는 것 같다. 중간에 합류한 이번 계자에서는 아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잘 지냈다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아이들처럼 물꼬의 프로그램을 즐기고 온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다. 다음에
는 꼭 하루 전날 미리모임부터 함께하고 싶다.

1.
이번 계자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은 고개너머와 쏜살같이 었다. 서울에서는 그런
산행을 할레야 할 수 없는 고개너머 산행. 진짜 등산 같은 등산. 물론 안전을 고려 하지만,
안전이란 이름으로 주춤거리지 않는 등산, 끝까지 올라갔을 때 희열을 주는 등산.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또 쏜살같이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해보고 싶은 탐나는 프로그램 이었다. 활을 만들
고 쏘아보고...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했고, 처음에는 잘 꽂히지 않던 화살이 나중에는 처
음의 사정거리 2배 밖에서도 정확히 꽂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활쏘기를 또 해보고 싶다.

2.
물꼬에서는 하루 세끼 먹는 밥이 모두 진수성찬이다. 찹쌀 부꾸미, 버섯죽, 미역국, 비빔밥,
떡국 등의 음식들을 먹으면서 서울에서 비싸게 주고 사먹는 음식들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단지 입에서만 달콤한 것이 아니라, 몸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
이 물꼬에서 먹는 음식들의 가치를 잘 알고 갈 수 있으면 한다.

3.
물꼬에서는 항상 다양한 품앗이들을 만날 수 있다. 물꼬 품앗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여서
그런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갖게 되는 거부감 같은 것이 없다. 지영샘, 태석
샘, 선진샘, 소희샘, 새끼일꾼 수진, 미리... 4박 5일동안 많은 얘기를 나눌 틈은 없었지만,
모두 따뜻하고 좋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아이들 생각하느라 이런 생각 못했
던 것 같은데, 품앗이들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고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4.
두레 샘들은 언젠가 물꼬가 품앗이들에게 품앗이를 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종종 말씀하신
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물꼬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고 받고 있다.
물질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 했던 경험이 나의 그릇을 참 많이 넓혀
준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도 다른 공립학교 교사들처럼 겨우 1박 2일의 행사
를 진행하면서 "내가 3만원 받고 주말에 이 일을 해야 되냐고!"라며 징징대지 않았을까? 그
리고 아이들에 대해 "아이휴, 저것들..."이란 투로 말하지 않는 법,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
편에 있어야 한다는 것, 소박한 삶의 철학 등을 모두 물꼬에서 배웠다. 실질적인 프로그램
내용들을 배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물꼬에 더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빠르고 솜씨 있게
농사를 포함한 살림을 해내고, 푸근푸근 정많게 사람들을 감싸고, 또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많은, 물꼬에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만약 내가 그런 그릇
이 될 수 있다면 물꼬 뿐만 아니라 전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거겠지.
어쨌든, 부족한 저를 항상 반겨주시고, 품앗이 일꾼으로 써주시는 물꼬,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