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영 샘은 작년부터 품앗이일꾼으로 오고 계십니다. 지금은 1년을 계획하고 하동에서 공부방 아이들과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샘 미친 것 같아요!"
108/109 계자 정지영

109번째 계자 하루 전날 고개너머를 하고 돌아오는 길 한 없이 따사로운 햇살과 온 몸에 넘치는 기운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은 그 평화로운 시골길에서 나오지도 않는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고, 몸치인 주제를 잊고 춤도 추고, 도로 한 복판이란 사실도 잠시 무시하고 한 길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 구경도 하고.... 그러다 이유 없이 자꾸만 슬금슬금 밀려나오는 웃음에 미친 듯이 정말 잘 웃었네요. 그런 제가 참 이상 했던가 봅니다. 함께 산을 타고 내려오던 7살 채현이가 절 말리며 소리칩니다. "샘 미친 것 같아요! 그만해요. 왜 자꾸 웃어요? 네."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덩달아 웃고 소리쳤으면서 채현이의 말에 "맞아! 맞아."를 외칩니다.
아.... 미쳐도 좋습니다. 그 생생한 행복감을 뭐라 표현하오리까....

지금도 생생하네요. 아이들 모아 물꼬 썰매장에 장판들고 썰매타러 가던 날.. 빙판길에 넘어지면 던 그길. 처음 온 것이니 깜짝 이벤트를 해 주겠다면 썰매장을 100m 앞에 두고 눈을 감게 하곤 양손을 꼭 잡아주며 절대로 눈을 안 된다고 몇 번에 걸쳐 다짐을 받던 아이들. 정말 물꼬 썰매장은 환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장판썰매의 속도감은 죽음(이보다 더 적합한 말을 모르겠습니다)이죠. 이거 정말 타 봐야 합니다. 뒤집어지고 부딪치고 아...지금도 또 타고 싶습니다. 온 몸으로 뒤 엉켜 타며 종국엔 장판도 필요없다 온 몸이 썰매되어 슈퍼맨 자세로 외치던 그 환호성을 어찌 잊으리오. 어디선가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한 그 스릴을. 그러나 아쉽게도 며칠 후 내린 비로 썰매장의 환상은 한 물 가버렸더랍니다.
딱 두 번 밖에 못 탔는데 말이죠. 근데 아쉬운 건여. 여름에는 수영장에서 돌아오는 길 포도밭의 탐스런 포도가 우릴 기다렸건만 겨울엔 그게 없어 섭하데요.

신나게 놀고 낮잠도 실컷 자고 나면 제 배는 항상 '꼬르륵' 물꼬의 '때 건지기'는 왜 그리 더디 오던지 배 불리 먹는 것은 온몸이 증거 하건만 징소리는 어찌 그리 더디 울리던지. 물꼬 밥은 보약 같습니다. 먹을수록 더 욕심이 나는 걸 보면 전 아직도 철이 덜 났나 봅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틈틈이 어른이란 장점을 이용하여 냉장고도 사전조사를 마쳐 놓고, 몰래 먹던 곶감 음. 맛났습니다. 알고 보면 물꼬는 정말 먹을 것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곳곳이 보물단지입니다. 다음에 또 다시 탐정놀이를 해 볼 생각입니다.

하루재기를 마치고 운동장을 거쳐 골목으로 오르던 곶감집. 꼭 산을 오르는 것 같다던 아이들과 함께 곶감집에 들어서면 일단 눕습니다. 장작을 태우는 시골집 특유의 매캐한 연기가 곳곳에서 묻어나던 그곳에 옹기종기 드러누워 읽어주던 이야기들. 나름의 구연동화를 하겠노라 다른 목소리를 열심히 고민하면 읽노라니 목은 아프고 아이들의 눈꺼풀은 좀처럼 감기지 않는 그 밤 꼬박 한 시간가량을 책을 읽어 주었더니 저도 모르게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은 항상 부지런한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절 깨워주었죠. 고추장집이였나 된장집이였나 희정샘집의 그 따끈하고 아늑했던 잠자리도 못 잊을 포근함이었네요. 전 연탄의 위력이 그렇게 강력한 줄 희정샘네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소곤소곤 방문을 넘어 들려오던 한 밤중의 부부의 노랫소리도 생각나고요. 지나샘이랑 저랑 그랬습니다. "태교 하시나...."

아침열기로 달꼬로 산보를 다녀왔었습니다. 아이들이 도대체 왜 밤에도 갔던 길을 또 가냐고 열심히 불만을 말합니다. 그래도 막상 걷고 있을 때는 또 다른 관심거리에 신나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돌아오는 길 준비 된 향긋한 목과 한잔에 모두 빙긋 웃으면 "우와 목과차 무지 맛있네요."라며 배시시 웃던 이들과 "참 좋다!"며 두 씩 마셔 버렸네요. 타박타박 걷는 즐거움을 많이 잊고 살고 있지 않나를 생각 해 봤던 아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기분 좋았던 것은요. 자신의 어떤 행동에 이유를 묻지 않아서입니다.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고, 고요한 밤이 되면 따뜻한 잠자리가 그리워지고, 때가 되면 응당 배가 고파지는 이 당연한 것이 참 안 되고 있던 저였거든요. 현애샘이 어떻게 왔냐기에 "저요. 놀러 왔어요!" 라는 대답에 처음에 무지 황당했는데, 하는 것 보더니 어느 날 그럽니다. "샘 진짜로 놀러 온 거 맞네요!" 죄송하지만, 전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어 물꼬에 큰 도움은 못되지만, 뭐 어떻습니까.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뭔가는 하겠죠. 뭔가 커다란 기대나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젠 방식을 좀 바꿔 보려고요.
'?'를 던지기 전에 '!'를 먼저 찍고 싶은 저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꼬는 제게 마법학교 같은 보물섬이었답니다.

어깨의 고통에 고생 하셨던 옥샘 어깨에 세장의 파스를 붙이며 느꼈던 울엄마 어깨. 샘들하고 마늘 까면서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수다의 재미. 연탄난로 주변의 대나무에 붙어 있던 매듭들. 예전 보다는 모두 짧았지만 늦은 밤 가마솥방을 데우는 하루재기. 게으른 제게 언제나 듬뿍듬뿍 먹거리를 주셨던 희정샘.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 밤새를 하셨던 샘들의 노고. 웃음소리를 도통 흉내 낼 수도 없는 독특한 웃음의 소유자 상범샘. 저 처음 봤음 상범샘 또래라고 생각하셨다는 말 다른 사람들 하고도 해 봤는데 모두 "흥"이랍니다. 쥐와 고양이 놀이 때 선보이신 최고의 시범조교 열택쌤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계자 때는 같이 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연신 무언가를 하시며 분주 하신,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젊으신 젊은 할아버지. 그리고 멋진 품앗이샘들과 새끼일꾼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한 해 정도는 쉬 만나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쉽지만, 다음에 뵐 때는 더 반가울 것 같습니다. 물꼬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