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자유학교에 함께 했던 품앗이일꾼이 쓴 갈무리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느림 속에 있는 무한한 다양성과 가능성

조금경애(품앗이일꾼)


아이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선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나의 직업이 돼 버
렸다. 첨엔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리지 않아 귀머거리가 된 적도 있지만, 이젠 무엇
을 이야기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20대 때에는 그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있으면 기를 쓰고 배우러 다니고, 여기저
기 캠프에도 기웃거려 보기도 하면서 기획하여 진행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 것들이 비교적
아이들과 소통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기엔 성공적이긴 했지만 수명은 그다지 길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제법 오래된 경험을 가진 잘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뭔가를 전달하는 수업 방식 보다는 아이들과 소통하
는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려운 시도이긴 하지만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은 이론을 잘 모르더라도, 잘 만들지 못하더
라도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하는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를 바란다. 그것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말이다. 사실 빠르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좀
더 느리게 좀 더 나누는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걱정하시는 학부모들도 많
지만 우리가 배우려는 것은 이런 나눔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마음이 앞선다는 것! 마음은 이런 여유로움을 찾으려 하지만 여유만 부릴 수
도 없어서 때론 나의 속도를 고집하면서 아이들을 재촉하기에 바빠진다. 늘 후회스럽고 고
민의 지점이다.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고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수업에서 소외시
키고, 소외돼버리는 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중에 계절 자유학교 물꼬를 만나게 되었다.
자유학교 물꼬는 화려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디 지나가지만 그 느림에 자연은 무한한 다양
함과 가능성을 채워주고 있었다. 도시에선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서, 무언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안하고 작은 시선, 작은 동작, 작은 생각들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강박들이
있었다지만 이곳 물꼬는 더 넓은 시선을 바라보게 하고 더 넓은 생각을 갖게 하며 느리지
만 움직임은 커져만 갔다.
그동안의 나의 경험들이 화려함에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고 마치 그것이 능력
있어 보이기까지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가만히 기다려 준다.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기를 샘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다려 준다. 재촉하
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잠깐 바라본 어둔 하늘조차도 마냥 받을 수밖에 없었던 채워짐은
값진 것이라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자유학교에서의 3박 4일 동안 많은 것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다르게만 느껴졌다. 2005년 아주 소박한 여름
을 맞이한 것 같다.

첫날 저녁엔 각 샘들이 모여 미리모임을 통해 지켜야 할 것들과 자유학교 물꼬의 중심생각
들 진행사항들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이뤄졌다. 2박 3일간의 일정은 특별한 시간은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있어 모임시간이 오래 걸리랴 생각했는데 꼼꼼하게 점검하는 덕분에 계절
자유학교 기간 내내 어색함 없이 진행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샘들의 일정은 아침 어른모임과 저녁 샘들 하루재기 시간에 꼬박 점검하였다. 짧은 기간이
긴 하지만 놓치는 부분들도 있었을 텐데 초보인 나에겐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공백 시간
없이 진행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 미리 준비를 할 때에도 공간이 익숙하지
않아 여러 번 헤맸을 것도 상주해 계신 샘들과 계절 자유학교에 여러 번 참여했던 품앗이
샘들의 친절함으로 준비 또한 잘 챙겨 놓을 수 있었다.

때건지기 시간은 식사시간이다. 이 시간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이 기간동안 동네
슈퍼에만 가면 쌓여있는 과자, 음료수, 인스턴트 음식들을 잠깐 잊자고 한다. 어린 아이들
이라 달라고 투정 부릴 수도 있으련만 첫 날 때건지기 시간 외엔 양껏 먹는 아이들의 모습
이 이쁘기만 했다. 처음 가마솥집에서 식사를 하려는데 오랜만의 파리와의 만남에 조금은
불쾌함을 갖긴 했지만 물꼬의 매력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파리와의 만남도 반갑기만 했
다. 사실 그리고 이튿날 그 많던 파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림놀이 시간은 버려진 비닐들을 모아다가 재활용하여 어린이들의 이야기 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고래방(강당)에 아이들은 모여 앉아 산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난 뒤
2모둠으로 나뉘어 어린이들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자아이들
이 많았던 우리 모둠은 처음 입을 열기가 어려웠지만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자연스레 이뤄
졌다. <우리는 깨끗한 지구를 원해요>라는 주제로 아름다웠던 시골마을에 사람들이 개발
이라는 목적으로 산을 파고 논과 밭을 망가뜨리며 도시의 모습으로 변해만 가는데 편리하
게 바뀐 도시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진다. 그래서 예전의 아름다웠던 시골마
을 꿈꾼다는 이야기로 4컷의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와 그림 모두 어린이들이 샘들의 도움
없이 마무리 하였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지만 샘들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외엔
어린이들이 모두 만들어 낸다. 앞서도 말했지만 재촉하지 않아도 어린이들은 모두 참여하
고 시간의 오차는 조금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마치도록 노력한다.

열린교실과 보글보글방은 테마교실처럼 진행되는데 열린교실에서는 주로 만들기를 하고,
보글보글방은 아이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만든 음식은 친구들과 샘들과 함께 나눠먹는
다.
대동놀이 시간은 전통놀이를 즐기는 시간이다. 물꼬라는 공간에선 이런 놀이들이 자연스럽
고 즐거움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
다.> 놀이를 하려고 해도 시시하다라는 생각에 오로지 팽이, 총싸움을 하고마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공간의 차이일까?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로 하루를 마칠 때는 한데모임을 통해 하루재기 시간을 갖는다. 마냥
뛰어만 놀았어도 그 놀이에서 아이들은 느끼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하루재기 시간을 통
해 나의 이야기들을 더듬더듬 하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해 보인다. 아이들의 생각은 내가 생
각지 못했던 다름을 배우게 된다.

이번 캠프에선 아이들이 많이 참가하지 않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 품앗이 샘들은 주로 농사일을 도왔다. 참 힘이 든 일이었다. 그리고 첨으로 경험한 일이여서 좋았다. 하지만 일 할 때의 고통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기엔 어려웠지만 내 손이 닿은 포도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새끼일꾼이라해서 계절 자유학교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보조교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많은 아이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새끼일꾼들의 역할은 프로그램마다 참여하며 샘들과 아이들의 소통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며 샘들 하루재기 시간에도 참여한다. 모든 시간에 열심히 참여했던 선아 새끼일꾼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