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군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카탈루냐 찬가>(조지 오웰)의 바로 다음 문장에 

바르셀로나가 등장한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에게 바르셀로나라는 낯설고 먼 도시에 대한 

기억은 그 책이 거의 출발이지 않았을까.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노먼 베쑨, 알베르 까뮈, 시몬느 베이유, 

파블로 네루다, 생텍쥐페리, 파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같은 이름자만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그들을 세계 

곳곳에서 달려오게 했던 스페인 내전(1936~1939) 당시 이 도시는 인민전선파의 거점으로 마지막까지 

프랑코군에 저항했다. 깨어있는 이들이 파시즘의 팽창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달려가게 만든 까닭에는 

이념으로 사람을 모을 수도 있었던 낭만의 시대라는 배경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서로를 <당신>이나 <동지>라고 

불렀다. 고용주 계급도 없었고, 하인 계급도 없었고, 거지도 없었고, 창녀도 없었고, 변호사도 없었고, 

사제도 없었고, 아첨도 없었고, 모자에 손을 대는 인사도 없었다.’(<카탈루냐 찬가> 가운데서)


  오래지 않았지만 해방구의 감동이 있던 이 도시의 저항은 FC 바르셀로나(바르샤)의 홈구장 ‘캄프 누(깜 노우)’가 

이어갔다 할 만하다. 카탈루냐인들의 자존심이고 독재 아래선 울분의 광장이었던 축구장이었다. 1936년 프랑코의 

마드리드 정권에 의해 박탈당한 카탈루냐 자치권은 41년 뒤인 1977년에야 되찾아진다. 이들의 자치의식은 더 오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더 깊어졌고, 축구공은 그들의 자존으로 더 단단해졌다. 그리하여 

엘 클라시코(프리메라리가의 최대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더비 경기)는 축구 경기 이상, 일종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대리전 같은 것이었다.

  ‘Mes Que un Club (클럽 너머 클럽 or 클럽 그 이상)'

  깜 노우의 관람석에 적힌 바르샤의 모토대로 바르샤는 그야말로 클럽 너머 클럽